도올과 숭산의 만남

mentality 2013. 1. 31. 12:34 |

도올 김용옥 선생의 회고

만행 도울 김용욱선생의 회고
큰스님의 초기 미국생활시절 큰스님을 직접만난 철학자이자 한의사인 김용욱선생의 회고담을 들어보자 나는 김용욱선생을 지난 2월 화계사에서 처음 만났다. 김선생과 큰스님의 관계는 아주 돈독하다 김용욱선생이 펴낸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에 묘사된 숭산스님이 얘기를 저자의 허락을 빌려 여기에 적는다. 그의 말은 격해서 때로 제자인 내 입장에서 볼 때 숭산 큰스님에 대한 표현이 무례하다고까지 느껴지지만 솔직한 고백이라 생각되어 독자여러분께 소개한다.
최근세 조선 禪宗의 宗脈을 따지자면 경허鏡虛 ㅡ 만공滿空의 거맥巨脈을 빼놓을 수 없다. 대부분 우리나라 20세기에 우리 귀에 익숙한 고승들 대부분이 이 경허 ㅡ 만공 맥의 문하에서 배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만공문하 고봉의 수제자로 숭산嵩山 행원行願이라는 인물이 있다. 내가 다녔던 한국신학대학 뒤켠의 물 건너 수유리 우이기슭에 있는 화계사의 조실스님으로서 참 존경스러운 분이다.
그런데 나는 이 숭산스님을 하버드 재학시에 케이브맂지 어느 허름한 미국집 안방에서 만났다. 숭산스님이라하면 우리나라 승려들에게는 조선불교를 세계만방에 선교한 가장 성공적스님으로서 그 고명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스님이 개척한 사찰만해도 지금 세계각국 도처에 공산권까지 포함해서 없는 곳이 없다시피 하다. 그리고 지금 행원스님이 문자 그대로 인간세의 願을 行하고 다니는 長征의 반경이란 혜초慧超(704~ ?)의 왕오천축국의 기행보다 더 방대한 것이요, 마오쩌둥의 장정보다도 더 처절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행원스님을 만나뵈었을 때만 하더라도 그분은 그리 널리 알려진 분이 아니었다. 선교개척의 초창기는 이미 지난 시점이었다 하더라도 그리 융성한 시기는 아니었다.
그라나 그분의 명성은 뉴잉글랜드 지역, 특히 예일 대학과 하버드 대학권 내에서는 좀 시끌시끌한 것이었다. 내가 숭산의 이름을 들은 것은 하버드 대학에서 교수들이 代講을 하고 있을 때 내 학생중에 한국불교전공을 지망하는 어느 참하고 예쁘장한 미국 여학생으로부터였다.
내 기억으로 그 여학생의 이름은 베키라 했고, 그 여학생은 하버드 대학학부를 졸업할 때 하버드 대학 통틀어 전체수석을 했으니까 무지하게 머리가 좋은 학생이었다.
그런데 베키는 당시 한국 불교사를 가르치고 있었던 나를 만날 때마다 ‘쑹산쓰님’ 운운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베키는 나보고 자기가 존경하는 학자인 당신이야말로 꼭 한번 ‘쑹산쓰님’을 만나보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당신과 같은 훌륭한 한국의 학인이 쑹산쓰님을 안 뵙는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베키가 아무리 나에게 쑹산쓰님을 만나보라고 권고했어도 나는 그를 만날 생각이 없었다. 주기적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는데 어느 날 케임브리지 젠센터에 오셔서 달마 토크(Dharma talk, 법문을 이렇게 영역)를 하시니깐 그때 꼭 한번 만나보라는 것이었다.
‘쑹산쓰님’의 달마 토크때는 하버드 주변의 학ㆍ박사들이 수백명 줄줄이 모여든다는 것이다. 내가 사실 불교의 인맥을 파악한 것은 최근의 일이므로 그때만해도 누가 누군지를 전혀 몰랐다.
실상 속마음을 고백하자면나는 ‘쑹산쓰님’을 순 사기군 땡중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인즉슨 나에겐 다음의 명료한 두 가지 생각이 있었다.
하나는 저 베키를 쳐다보견데, 저 계집아이를 저토록 미치게 만든 놈, 즉 계집아이가 숭산이라는 개인에게 저토록 절대적 신앙심을 갖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무슨 사교邪敎적 권위의식을 좋아하는 절대론자일 것이고 따라서 해탈된 인간으로 간주될 수는 없다. 자기는 자유로울지 모르지만 타인에게 절대적 복속과 부자유를 안겨주는 놈은 분명 사기꾼일 것이다. 
또 하나는 ‘달마토크’의 사기성에 있었다. 숭산이 다 늙어서 미국엘 건너온 사람인데 무슨 영어를 할 것이냐? 도대체 기껏 지껄여봐야 콩글리쉬 몇마딜 텐데, 영어로 말할 것 같으면 천하에 무적인 도사 김용욱도 하버드에선 벌벌 기고 있는데, 지가 무슨 달마 토크냐 달마토크는? 하버드 양코배기 학박사들을 놓고 달마토크를 한다니 아마도 그놈은 분명 뭔가 언어 외적 사술邪術을 부리는 어떤 사기성이 농후한 인물일 것이다. 正道는 言語속에 내재할 뿐이다. 
그런데 베키에 간청에 못이겨 케임브리지 젠센터의 한구석에 쭈구리고 앉아 숭산의 달마토크를 듣는 순간, 나는 언어를 잃어버렸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동안 나의 식識의 작용속에서 집적해왔던 ‘객기客氣’가 얼마나 무상한 것인가를 깨달았던 것이다. 한 인간의 수도를 통해 쌓아올린 경지는 말과 말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로지 마음과 마음으로 전달될 뿐이다. 마음과 마음의 만남은 언어가 없는 것이기에 거짓이 끼어들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그가 해탈인이었음을 직감했다. 
그의 얼굴 속에는 위압적인 석굴암의 부처님이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동네골목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땅꼬마’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몸의 해탈의 최상의 경지는 바로 어린애 마음이요, 어린애 얼굴이다.동안童顔의 밝은 미소, 그 이상의 해탈, 그 이상의 하느님은 없는 것이다.
숭산은 결코 거구는 아니라 해도 작은 덩치는 아니다. 당시 오순중반에 접어든 그의 얼굴은 어린아이 얼굴 그대로였다. 그의 달마토크는 정말 가관이었다. 방망이를 하나들고 앉아서 기끔 톡톡 치며 내밷는 꼬부랑 혀 끝에 매달리는 말들은 주어 동사 주어 술부가 막구 도치되는가 하면 형용사 명사 구분이 없고 전치사란 전치사는 다 빼먹는 정말 희한한 콩글리쉬였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사실은 영어도사인 이 도울이 앉아 들으면서 그 콩글리쉬가 너무 재미있어 딴전 볼 새 없이 빨려들어갔다는 것이다. 그의 콩글리쉬는 어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언어의 파워를 과시하고 있었다. 주부 술부가 제대로 틀어박힌, 유려한 접속사로 연결되는 어떠한 언어형태도 모방할 수 없는 원초적인 마력을 발하고 있었다. 
그의 달마토크가 다 끝나갈 즈음, 옆에있던 금발의 여자가 큰스님께 질문을 했다. 내 기억으로는 그여자는 하버드 대학 박사반에 재학중닌 30세 전후의 학생이었다. 그녀가 물었다.
“왓 이즈 러브 (What is Love)?”
큰스님은 내처 그여학생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 것이었다.
“아이 애스크 유, 왓 이즈 라브(I ask you, what is love)?”
그러니까 그 학생은 대답을 잃어버리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 다음 큰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디스 이즈 라브(This is love).” 
그래도 그 여학생은 뭐라 할말을 찾지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학생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동안의 큰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을 잇는 것이었다.
“유 애스크 미, 아이 애스크 유, 디스 이즈 라브 (You ask me, I ask you. This is love)”
인간에게 있어서 과연 이이상의 언어가 있을 수 있는가? 아마 사랑 철학의 도사인 예수도 이 짧은 시간에 이짧은 몇마디 속에 이렇게 많은 말을 담기에는 재치가 부족했을 것이다. 나는 숭산 큰스님의 비범함을 직감했다. 그의 달마토크는 이미 언어를 뛰어넘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국경도 초월하고 있었다. 오로지 인간, 그것뿐이었다.
나는 베키와 같이 이층 선사가 머무는 방으로 올라갔다. 케임브맂지 젠센터라고 해봐야 뉴잉글랜드 전형의 목조 주택건물 좀 큰 것을 개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층 한 방은 한국 온돌 안방처럼 꾸며져 있었다. 나는 그에게 그냥 한식으로 넙죽 절을 했다. 그런데 그는 나에게 맞절을 했다. 나를 하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때 나는 매우 신비롭게 생각했다. 그가 만나는 사람은 모두 하버드 대학 박사고, 이 도울 김용옥 이래봐야 당시는 매우 보잘것없는 초라한 박사반 학생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그가 나를 사전에 알았던 것도 아니다. 난 밝은 동안의 미소를 머금고 앉아있는 그 앞에서 멋젓게 방안을 빙 둘러봤다. 이것이 바로 1981년 3월 19일 밤 열 시 반경의 일이다…….(중략)……어느 날이었다. 나는 숭산 행원스님과 함께 앉아 이 얘기 저 얘기를 주고 받다가, 도대체 어떻게 미 미국땅에 와서 보시를 하게 되었는가? 어떻게 불법을 전파하여 이 방대한 조직을 그것도 미국의 지적 심장부인 동부 뉴잉글랜드를 중심으로 정착시킬 수가 있었는가? 하는 이야기로 화제를 옮기게 되었다. 
(숭산 큰스님 이야기) 아…… 내가 뭐 미국에 와서 포교하구 뭐 그런생각 꿈에나 해봤나? 전혀 우연이여, 생각두 안 했든 거여. 내가 인연이 닿아 일본에 몇 년 있었는데 그때 뉴욕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차표를 보내주면서 한번 놀러왔다 가라는 거여. 아 그때만 해도 미국구경 한번하기 힘드니께 얼씨구나 좋다 하고 동경에서 뉴욕가는 비행기를 탓지. 그런데 그때만 해도 비행기 속에서 한국사람 만나기가 참 힘들었거든, 내가 앞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내 뒤켠에 창가에 있는 어느 중년신사가 한국말로 한국 스님이 아니시냐구 말을 거는 겨여. 나두 깜짝놀라 비행기칸에서 참선만 하구 앉었기두 지루하길래 그 사람 옆 빈 자리에 가 앉어 이 얘기 저 얘기 하면서 미국사정두 듣고 갔질 않았겠나? 알구 보니까 그 사람이 로드아일랜드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고 있던 교수였는데 거 동양문화에 대한 향심이 보통이 아니더라구. 뉴욕에 가걸랑 로드아일랜드가 얼마 안 되니깐 꼭 놀러 오라면서 전화번호랑 주소를 적어주는 거여. 뉴욕에 있는데 어느 날 그 분 김교수님 생각이 나드라구, 그래서 전화하구 그 집엘 놀러갔지. 그런데 그집에 내가 온다해서 김교수가 불러다 놨는지 불교에 관심있는 미국청년들이 서너 명 와 있더라구. 무슨 예일대학 학생들이래나. 내가 그때만해도 예일대학이 뭔지나 알았어? 그런데 이 녀석들이 자꾸만 물어보는거여. 내가 뭘 불교에 대해서 아는 게 있어야지, 게다가 김교수 통역으로 어쩌구 저쩌구 얘기해봐야 개갈이 나야지.
그래서 내가 뭘 직접 보여줄 생각을 한 거여, 그런데 내가 최면술을 좀 하거든. 그래서 내가 너회들한테 최면을 걸겠다 하니깐, 이 예일 대학 학생녀석들이 자기들은 그 따위 최면엔 절대 안 걸린다는 거여. 자기들은 이성적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그런 덴 걸릴 수가 없다는 거여.
요시, 한번 맛 좀 봐라! 하구 내가 최면을 걸었지.
수리술 마수리 하고 주문을 외면서 이놈들 최면을 거니깐 아 이놈들이 최면에 어떻게 잘 걸리는지. 조금있단 앉은채로 천장까지 부응붕 뜨는거여, 이놈들이 번갈아 가면서 하늘 높이 붕붕뜨는거여, 아이 이 지랄을 하고 나니깐 이놈들이 엎드려 절하드라구, 그리구 내소문이 쫘악 퍼진거여. 그리군 계속 몰려들기 시작하는거여. 그래서 그 길로 김교수님도 붙잡구 그래서 미국을 뜨지 못하구 프라비던스에 절을 세우게 된 거여. 프라비던스엔 지금 아주 큰 절이섰지 그게 내 본터여, 그게 바루 최면에서부터 시작한 거라구…….
서기 1972년 빈털털이 숭산의 체험을 털어놓는 이 아주 진솔한 어구들은 인류종교의 발달사 그리고 선교역사의 가장 보편적 패턴을 말해주는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고등ㆍ하등을 막론하고 고금을 통해서 이 숭산의 말은 가장 진실한 종교의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가 고구考究하고자 하는 ‘호국불교’의 본질도 바로 이 숭산의 체험세계에 내제하는 보편적 구조로부터 탐구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민중이나 이방의 대중에게 고등한 언어 체계나 고도의 사유체계가 처으부터 먹혀 들어갈 수가 없다.
숭산스님에게는 언어(영어)가 없었고 재격이 없었으며 또 폭력(대사관 같은 것)의 뒷 받침이 없었다. 그에게는 대중에게 과시할 일체 권위라든가 위력이 없었다. 이러한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숭산은 처음에 괴력난신怪力亂神을 행하는 괴승으로 밖에는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는 영력을 소유한 선승으로 이미지가 순화되어갔고 지금은 ‘부처님 머리에 담뱃재를 터는’ 것을 가르치는 젠 마스터 철인이 되어있다.

Posted by Corealigh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