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차범근에 대해서 만큼은 '최고'라는 데 이론이 없다. 아시아 최고의 축구영웅으로 불러 손색이 없다. 세계가 인정하는 분데스리가 기록이 그 사실을 든든히 입증한다. 그에게도 배고픈 시절이 있었고, 자칫 곁길로 샐 뻔한 고비도 있었다. 물론 그러한 위기들이 더욱 강하고 크게 성장하는 거름이 되긴 했지만. 차범근은 늘 깔끔하고 세련된 이미지다. 그래서 그가 털어놓는 어릴 적 산골 얘기는 더 정감이 있다.

▶자장면이 뭐예요?

어린 시절 마을엔 전기도 안 들어왔다. 경기도 화성군 태안면 산동네. 화산초등학교 4학년 때 운동을 시작했다. 축구, 핸드볼, 육상에 씨름까지 했다. 빠른 데다 운동신경 뛰어나니 못할 게 없었다. 그러다 보니 혼자 바빴다. 이 동네에서 핸드볼 예선을 뛰고, 저 동네로 날아가 축구 준결승을 치르고.... 대충 그런 식이었다.

화성군 대표로 경기도 육상대회(200m)에 출전하기 위해 인천에 갔을 때였다. 당시 최고의 보양식은 설렁탕. 한데 설렁탕에 물린 선생님이 "자장면 한번 먹어 보자"며 중국집에 들어갔다. 사실 그때까지 자장면이란 건 듣도보도 못한 음식이었다.

"잔뜩 기대하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보던 시커먼 게 쑥 나오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젓가락을 놔 버렸죠. 어쩌면 아버지랑 달구지 타고 가면서 보던 쇠똥이랑 그렇게 똑같을 수가 있는지.... 시커먼 거 밑에 국수가 있는지도 몰랐죠."

당황한 선생님이 면을 물에 헹궈 내밀었다. 장맛으로 먹는 자장면을 물에다 빨았으니 맛이 있을 리 만무했다. 또 젓가락을 놔버렸다. 결국, 그날도 설렁탕을 먹었다.

이듬해 합숙 때 다시 자장면과 부딪쳤다. "친구들은 다 잘 먹더라고요. 도대체 무슨 맛인가 싶어 젓가락 끝으로 장을 살짝 찍어 혀에 대 봤죠. 근데 되게 맛있더라고요. 그때부터 자장면 광이 됐습니다. 대표단에 있을 때도 외국 나갔다 오면 자장면부터 먹었습니다. 지금도 엄청 좋아하죠."

▶아버지의 선물

참 가난하던 시절이었다. 여름에 이미 쌀이 떨어져 옥수수, 호박, 수제비로 배를 채웠다. 그러니 운동화는 그림의 떡. 고무신에 밀가루 배급포대 찢은 헝겊을 감아 공을 찼다. 그도 아니면 맨발이었다. 그랬으니 아버지가 스케이트를 사오시던 날 삼 형제가 잠을 설친 건 너무도 당연했다.

"다음날 새벽 마을 앞 저수지로 갔죠. 아버지는 위에서 내려다보시고, 큰형부터 차례로 탔습니다. 형들은 몇 걸음도 못 가 나뒹굴었지만 저는 넘어지지 않고 탔죠. 3일째 되니 형들이 꽁무니를 빼더라고요. 아버지는 저만 데리고 저수지로 가셨습니다."

겨우내 영하 20도의 혹한 속에서 매일 새벽 1시간씩 스케이트를 탔다. 당시 스케이트야 칼날 뻔하고, 신발 가죽 뻔했을 터. 발목이 끊어질 듯 아팠지만, 어금니 물고 저수지를 돌았다.

여름에는 1시간이 걸리는 '동네 한 바퀴'를 주문하셨다. 물론 새벽에. 다 뛰면 날계란 하나를 먹을 수 있었다.

나중에 화제가 됐을 만큼 굵은 허벅지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아버지는 운동하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계절에 맞춰 기초체력을 다져주고 계셨던 거다.

"아버지는 운동선수의 정신을 무척 강조하셨어요. 가난해도 진실하게, 당당하게 살라고 하셨죠. 그때 몸에 밴 새벽 운동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제게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이죠."

차범근, 가출하다

축구 하려고 서울 영도중학교에 들어갔는데 유니폼 입기도 전에 팀이 해체됐다.

그 바람에 팔자에도 없는 필드하키 선수가 됐다. 공도 못 차면서 영등포까지 그 먼 길을 통학하려니 속이 아플 수밖에. 새벽에 나가 밤늦게 귀가하는 게 고역이었다. 죽어도 공을 차고 싶어 집에 전학 얘기를 꺼냈다. 당시에는 전학하는 데 적잖은 돈이 들었다. 아들의 운동정신과 근성을 간파한 가난한 농사꾼 아버지는 삶의 터전인 땅을 쪼개 팔았다.

2학년 2학기 때 경신중학교로 옮겼고, 비지땀을 쏟은 결과 기량이 크게 늘었으나 경신고 진학 대상에서는 제외되고 말았다. 눈물을 머금고 경성고로 방향을 틀었다.

한데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경신고 교장선생님이 난리를 쳤고, 경성고 입학시험 치는 날 감독과 선배들이 들이닥쳐 경신고로 다시 진로를 돌려놨다.

이 과정에서 경신고 선배들이 대놓고 으르렁거렸다. 후배 잘못은 아니지만 귀한 대접받는 햇병아리가 거슬렸던 게다.

운동부 군기가 군대 뺨치던 시절. 겁에 질려 순간 엉뚱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선배들 구타가 너무 두려워 가출했습니다. 서울 친구 집에 일주일을 숨어 있었어요. 근데 친구는 학교 가고 저는 집에 있으니 친구 어머니 눈치가 보여 더는 못 있겠더라고요."

땅 팔아 전학까지 시켜줬는데 가출을 했으니 아버지에겐 다시 없는 불효였다. 결국, 큰형에게 연락해 집으로 내려갔고, 아버지 손에 이끌려 경신고 장운수 감독 손에 넘겨졌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다. 장 감독이 축구부 선배들에게 "범근이 손대면 혼내주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방어막을 쳐준 것이다. 만에 하나 삐끗했더라면 그저 그런 하키선수가 됐거나, 가출 청소년이 될 뻔했다. 그랬으면 대한민국은 축구영웅을 갖지 못했을 테고.

▶옥상으로 올라와!

고교 2학년 때 청소년대표가 됐고, 3학년 때 A대표팀에 발탁됐다. 1972년 태국에서 열린 아시안컵 이라크와의 조 편성 경기가 데뷔전이 됐다.

섭씨 35도가 넘는 날씨에 혀를 빼 문 선배들은 경기중 "범근아"만 외쳐댔다. 죽으라 뛰었지만 0대0. PK로 승부를 가려야 했다. 지친 선배들은 후배들을 앞세웠다. 청소년대표인 차범근과 황재만(당시 고려대 1학년)이 등을 떼밀렸고, 공교롭게도 둘 다 헛발질을 하고 말았다. 결과는 2-4 패.

차범근이 힘껏 때린 볼은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져 관중석에 떨어졌다. 속칭 새를 잡은 것이다.

"선배들이 집합을 시켰어요. 외국에서 '옥상으로 올라와'를 한 거죠. 정말 라자호텔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다행히 맞지는 않았지만."

천하의 차범근이 태극마크 신고식을 혹독하게 치른 셈이다.

▶'대표팀 잡부' 차범근

그 시절엔 다 그랬지만, 대표팀 막내라 궂은 일은 독차지였다.

"태릉선수촌 시절에는 일요일에 외출이 허용됐습니다. 근데 나가는 선배마다 빨랫감을 던져주는 겁니다. 점심때가 다 돼서야 빨래가 끝나죠. 얼마나 비벼댔는지 손바닥이 다 벗겨졌습니다."

공에 바람 넣는 일도 당연히 막내 몫이었다. "선배들 자는데 혼자 공 서른 개 바람 다 넣고 나면 파김치가 됐어요. 나중엔 펌프가 뜨거워져 손도 못 댈 정도가 되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바람을 넣다 보면 덜 들어가고, 더 들어가는 게 있게 마련. 하필 딱딱한 공을 차 통증을 느낀 왕고참 이회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바람 넣는 것부터 다시 배워." 볼보이는 되레 재미난 일에 속했다.

▶독일 선수에게 마늘 먹이다

골잡이로 명성을 날리던 독일 분데스리가 시절. 너무나 다른 훈련법과 식생활로 3년을 고생했다.

"훈련을 감질나게 하는 거예요. 몸이 근질거려 못 견딜 정도로. 그래서 훈련 끝나고 혼자 30분을 더 뛰었어요. 서로 이해를 못 했죠."

하기야 한국에서 두세 시간씩 오전, 오후 두 차례 하던 훈련을 달랑 한 시간 반 하고 접으니 근질거릴 수밖에. 식생활도 고통스러웠다. 늘 속이 허했다. "뜨끈한 우족탕 같은 걸 먹고 싶더라고요. 포만감이 와야 하는데 늘 뭔가 부족했어요. 스테이크도 두 개는 먹어야 양이 찼죠. 그게 창피했어요. 동료가 괜찮다며 많이 먹으라고 했지만 못 먹고 산 티를 내는 것 같아 늘 민망했습니다. 공조차 못 찼으면 밥이나 축내는 식충이가 될 뻔했지요."

3년이 지난 후에야 중심을 잡았다. 운동습관도 식습관도 모두 독일식으로 바뀌었다. "견뎌내려면 적응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데 정작 심각한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냄새였다. 한국인의 마늘냄새. 나흑바이라는 동독 출신 선수는 5m 전방에서부터 코를 쥐었다. "너희도 겨드랑이에서 노린내 난다"고 반박도 했지만, 굳이 부딪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꾀를 냈다. "팀 동료를 집으로 불러 불고기를 먹였죠. 잘 먹더라고요. 서로 이해하는 계기가 됐죠. 서른여섯까지 공을 찰 수 있었던 배경도 됐고요."

차범근은 나중에 '유치원 선생님'으로 불렸다. 조카뻘 햇병아리들에게 경험담도 들려주고, 이런저런 조언도 하면서 얻은 애칭이다. 독일에서 10년간 주전으로 뛰면서 넣은 골은 모두 131개. 그 중 당대 최고 리그인 분데스리가에서만 98골을 기록했다. PK골은 단 한 개도 없다.

▶차범근, 술 마신 적 없다? 있다!

보통 차범근은 술을 안 마시는 걸로 알고 있다. 평생 입에도 대지 않았다고 우기는 이도 있다. 아니다. 다 틀렸다. 그도 술을 마신다.

"집안 식구 다 잘 마십니다. 저는 성공하고 싶어 안 마셨을 뿐이지요. 그렇다고 아주 안 마시지는 않습니다. 더울 때는 맥주 한 잔씩 합니다. 와인도 마시고요." 와인 중에서는 독일산 리슬링을 즐긴다. 요즘 들어 자주 안 마시지만, 손님하고 마주하면 리슬링을 딴다. 대신 소주나 위스키, 고량주 같은 독주는 마셔본 적 없다. 예의상 입에는 대지만 한 잔을 털어 넣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Posted by Corea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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