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차리게해주는 명언베스트모음 ㅋㅋ$$$$$$$$$$$$$$$$$$$$$$$$$$$$$$$$$$$$$$$$$$$$$$$$$$$

 

감히 도전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지그 지글라


그대의 도전을 존중하라, 어둠의 딱지를 붙인 공간이 실은 밝은 빛으로 그대를 데려가는 곳이니. -사냐 로만


기쁨과 도전은 미루지 마라. -김용삼


나는 계속 타석에 나가 날아오는 공을 강타했다. -베이브 루스


너의 한계성에 도전해 싸우라. 그러면 분명히 그것들은 네 능력 안에 들어올 것이다. -리차드 바크


담력이 탐나거든 두려워 손도 내밀지 못하는 일에 도전하라. 이것이 공포심을 극복하는 가장 신속하고 정확한 방법이다. -앤드류 카네기


시도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마라. 회피한다고 해도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어려움은 언젠가는 반드시 현실로 다가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용삼


시도하지 않는 곳에 성공이 있었던 예는 결코 없다. - H. 넬슨


도전에 성공하는 비결은 단 하나, 결단코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디오도어 루빈


모든 것을 인내로 대하는 사람만이 모든 것에 도전한다. -바우베낙스


불행에 굴복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도 대담하게 적극적이며 과감하게 불행에 도전할 일이다. -베르길리우스


비록 실패하더라도 큰 것을 감행하는 편이, 훨씬 큰 즐거움이 있으며, 고통도 작은 일일수록 크고, 큰 일일수록 적어지는 반비례 관계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큰 일이란 당초부터 승리도 패배도 초월한 마음가짐이 아니고서는 감히 도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루즈벨트


산다는 것은 죽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며,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절망의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고, 시도해본다는 것은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모험은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생에서 가장 큰 위험은 아무 것도 감수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레오 버스카글리아


어떤 일을 끝마쳐야 할 날짜를 정해 그것에 도전하라. -윌리암 메닝거


인생의 의미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발견되지 않는다. 좀더 구체적 상황으로 당면하는 도전에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발견되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그대 자신을 내놓으라. 그대에게 주어진 상황, 현재라고 하는 이 시간에 그대를 내놓으라. 그렇게 하면 그대에게 의미가 보일 것이다. -빅터 프랭크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양사언


해보지 않고는 당신이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프랭클린 아담

Posted by Corealight
TAG 명언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적어도 차범근에 대해서 만큼은 '최고'라는 데 이론이 없다. 아시아 최고의 축구영웅으로 불러 손색이 없다. 세계가 인정하는 분데스리가 기록이 그 사실을 든든히 입증한다. 그에게도 배고픈 시절이 있었고, 자칫 곁길로 샐 뻔한 고비도 있었다. 물론 그러한 위기들이 더욱 강하고 크게 성장하는 거름이 되긴 했지만. 차범근은 늘 깔끔하고 세련된 이미지다. 그래서 그가 털어놓는 어릴 적 산골 얘기는 더 정감이 있다.

▶자장면이 뭐예요?

어린 시절 마을엔 전기도 안 들어왔다. 경기도 화성군 태안면 산동네. 화산초등학교 4학년 때 운동을 시작했다. 축구, 핸드볼, 육상에 씨름까지 했다. 빠른 데다 운동신경 뛰어나니 못할 게 없었다. 그러다 보니 혼자 바빴다. 이 동네에서 핸드볼 예선을 뛰고, 저 동네로 날아가 축구 준결승을 치르고.... 대충 그런 식이었다.

화성군 대표로 경기도 육상대회(200m)에 출전하기 위해 인천에 갔을 때였다. 당시 최고의 보양식은 설렁탕. 한데 설렁탕에 물린 선생님이 "자장면 한번 먹어 보자"며 중국집에 들어갔다. 사실 그때까지 자장면이란 건 듣도보도 못한 음식이었다.

"잔뜩 기대하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보던 시커먼 게 쑥 나오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젓가락을 놔 버렸죠. 어쩌면 아버지랑 달구지 타고 가면서 보던 쇠똥이랑 그렇게 똑같을 수가 있는지.... 시커먼 거 밑에 국수가 있는지도 몰랐죠."

당황한 선생님이 면을 물에 헹궈 내밀었다. 장맛으로 먹는 자장면을 물에다 빨았으니 맛이 있을 리 만무했다. 또 젓가락을 놔버렸다. 결국, 그날도 설렁탕을 먹었다.

이듬해 합숙 때 다시 자장면과 부딪쳤다. "친구들은 다 잘 먹더라고요. 도대체 무슨 맛인가 싶어 젓가락 끝으로 장을 살짝 찍어 혀에 대 봤죠. 근데 되게 맛있더라고요. 그때부터 자장면 광이 됐습니다. 대표단에 있을 때도 외국 나갔다 오면 자장면부터 먹었습니다. 지금도 엄청 좋아하죠."

▶아버지의 선물

참 가난하던 시절이었다. 여름에 이미 쌀이 떨어져 옥수수, 호박, 수제비로 배를 채웠다. 그러니 운동화는 그림의 떡. 고무신에 밀가루 배급포대 찢은 헝겊을 감아 공을 찼다. 그도 아니면 맨발이었다. 그랬으니 아버지가 스케이트를 사오시던 날 삼 형제가 잠을 설친 건 너무도 당연했다.

"다음날 새벽 마을 앞 저수지로 갔죠. 아버지는 위에서 내려다보시고, 큰형부터 차례로 탔습니다. 형들은 몇 걸음도 못 가 나뒹굴었지만 저는 넘어지지 않고 탔죠. 3일째 되니 형들이 꽁무니를 빼더라고요. 아버지는 저만 데리고 저수지로 가셨습니다."

겨우내 영하 20도의 혹한 속에서 매일 새벽 1시간씩 스케이트를 탔다. 당시 스케이트야 칼날 뻔하고, 신발 가죽 뻔했을 터. 발목이 끊어질 듯 아팠지만, 어금니 물고 저수지를 돌았다.

여름에는 1시간이 걸리는 '동네 한 바퀴'를 주문하셨다. 물론 새벽에. 다 뛰면 날계란 하나를 먹을 수 있었다.

나중에 화제가 됐을 만큼 굵은 허벅지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아버지는 운동하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계절에 맞춰 기초체력을 다져주고 계셨던 거다.

"아버지는 운동선수의 정신을 무척 강조하셨어요. 가난해도 진실하게, 당당하게 살라고 하셨죠. 그때 몸에 밴 새벽 운동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제게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이죠."

차범근, 가출하다

축구 하려고 서울 영도중학교에 들어갔는데 유니폼 입기도 전에 팀이 해체됐다.

그 바람에 팔자에도 없는 필드하키 선수가 됐다. 공도 못 차면서 영등포까지 그 먼 길을 통학하려니 속이 아플 수밖에. 새벽에 나가 밤늦게 귀가하는 게 고역이었다. 죽어도 공을 차고 싶어 집에 전학 얘기를 꺼냈다. 당시에는 전학하는 데 적잖은 돈이 들었다. 아들의 운동정신과 근성을 간파한 가난한 농사꾼 아버지는 삶의 터전인 땅을 쪼개 팔았다.

2학년 2학기 때 경신중학교로 옮겼고, 비지땀을 쏟은 결과 기량이 크게 늘었으나 경신고 진학 대상에서는 제외되고 말았다. 눈물을 머금고 경성고로 방향을 틀었다.

한데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경신고 교장선생님이 난리를 쳤고, 경성고 입학시험 치는 날 감독과 선배들이 들이닥쳐 경신고로 다시 진로를 돌려놨다.

이 과정에서 경신고 선배들이 대놓고 으르렁거렸다. 후배 잘못은 아니지만 귀한 대접받는 햇병아리가 거슬렸던 게다.

운동부 군기가 군대 뺨치던 시절. 겁에 질려 순간 엉뚱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선배들 구타가 너무 두려워 가출했습니다. 서울 친구 집에 일주일을 숨어 있었어요. 근데 친구는 학교 가고 저는 집에 있으니 친구 어머니 눈치가 보여 더는 못 있겠더라고요."

땅 팔아 전학까지 시켜줬는데 가출을 했으니 아버지에겐 다시 없는 불효였다. 결국, 큰형에게 연락해 집으로 내려갔고, 아버지 손에 이끌려 경신고 장운수 감독 손에 넘겨졌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다. 장 감독이 축구부 선배들에게 "범근이 손대면 혼내주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방어막을 쳐준 것이다. 만에 하나 삐끗했더라면 그저 그런 하키선수가 됐거나, 가출 청소년이 될 뻔했다. 그랬으면 대한민국은 축구영웅을 갖지 못했을 테고.

▶옥상으로 올라와!

고교 2학년 때 청소년대표가 됐고, 3학년 때 A대표팀에 발탁됐다. 1972년 태국에서 열린 아시안컵 이라크와의 조 편성 경기가 데뷔전이 됐다.

섭씨 35도가 넘는 날씨에 혀를 빼 문 선배들은 경기중 "범근아"만 외쳐댔다. 죽으라 뛰었지만 0대0. PK로 승부를 가려야 했다. 지친 선배들은 후배들을 앞세웠다. 청소년대표인 차범근과 황재만(당시 고려대 1학년)이 등을 떼밀렸고, 공교롭게도 둘 다 헛발질을 하고 말았다. 결과는 2-4 패.

차범근이 힘껏 때린 볼은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져 관중석에 떨어졌다. 속칭 새를 잡은 것이다.

"선배들이 집합을 시켰어요. 외국에서 '옥상으로 올라와'를 한 거죠. 정말 라자호텔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다행히 맞지는 않았지만."

천하의 차범근이 태극마크 신고식을 혹독하게 치른 셈이다.

▶'대표팀 잡부' 차범근

그 시절엔 다 그랬지만, 대표팀 막내라 궂은 일은 독차지였다.

"태릉선수촌 시절에는 일요일에 외출이 허용됐습니다. 근데 나가는 선배마다 빨랫감을 던져주는 겁니다. 점심때가 다 돼서야 빨래가 끝나죠. 얼마나 비벼댔는지 손바닥이 다 벗겨졌습니다."

공에 바람 넣는 일도 당연히 막내 몫이었다. "선배들 자는데 혼자 공 서른 개 바람 다 넣고 나면 파김치가 됐어요. 나중엔 펌프가 뜨거워져 손도 못 댈 정도가 되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바람을 넣다 보면 덜 들어가고, 더 들어가는 게 있게 마련. 하필 딱딱한 공을 차 통증을 느낀 왕고참 이회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바람 넣는 것부터 다시 배워." 볼보이는 되레 재미난 일에 속했다.

▶독일 선수에게 마늘 먹이다

골잡이로 명성을 날리던 독일 분데스리가 시절. 너무나 다른 훈련법과 식생활로 3년을 고생했다.

"훈련을 감질나게 하는 거예요. 몸이 근질거려 못 견딜 정도로. 그래서 훈련 끝나고 혼자 30분을 더 뛰었어요. 서로 이해를 못 했죠."

하기야 한국에서 두세 시간씩 오전, 오후 두 차례 하던 훈련을 달랑 한 시간 반 하고 접으니 근질거릴 수밖에. 식생활도 고통스러웠다. 늘 속이 허했다. "뜨끈한 우족탕 같은 걸 먹고 싶더라고요. 포만감이 와야 하는데 늘 뭔가 부족했어요. 스테이크도 두 개는 먹어야 양이 찼죠. 그게 창피했어요. 동료가 괜찮다며 많이 먹으라고 했지만 못 먹고 산 티를 내는 것 같아 늘 민망했습니다. 공조차 못 찼으면 밥이나 축내는 식충이가 될 뻔했지요."

3년이 지난 후에야 중심을 잡았다. 운동습관도 식습관도 모두 독일식으로 바뀌었다. "견뎌내려면 적응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데 정작 심각한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냄새였다. 한국인의 마늘냄새. 나흑바이라는 동독 출신 선수는 5m 전방에서부터 코를 쥐었다. "너희도 겨드랑이에서 노린내 난다"고 반박도 했지만, 굳이 부딪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꾀를 냈다. "팀 동료를 집으로 불러 불고기를 먹였죠. 잘 먹더라고요. 서로 이해하는 계기가 됐죠. 서른여섯까지 공을 찰 수 있었던 배경도 됐고요."

차범근은 나중에 '유치원 선생님'으로 불렸다. 조카뻘 햇병아리들에게 경험담도 들려주고, 이런저런 조언도 하면서 얻은 애칭이다. 독일에서 10년간 주전으로 뛰면서 넣은 골은 모두 131개. 그 중 당대 최고 리그인 분데스리가에서만 98골을 기록했다. PK골은 단 한 개도 없다.

▶차범근, 술 마신 적 없다? 있다!

보통 차범근은 술을 안 마시는 걸로 알고 있다. 평생 입에도 대지 않았다고 우기는 이도 있다. 아니다. 다 틀렸다. 그도 술을 마신다.

"집안 식구 다 잘 마십니다. 저는 성공하고 싶어 안 마셨을 뿐이지요. 그렇다고 아주 안 마시지는 않습니다. 더울 때는 맥주 한 잔씩 합니다. 와인도 마시고요." 와인 중에서는 독일산 리슬링을 즐긴다. 요즘 들어 자주 안 마시지만, 손님하고 마주하면 리슬링을 딴다. 대신 소주나 위스키, 고량주 같은 독주는 마셔본 적 없다. 예의상 입에는 대지만 한 잔을 털어 넣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Posted by Corealight

댓글을 달아 주세요

가보고 싶은 사찰

private 2013. 2. 16. 15:08 |

백제 선운사


크게 보기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500
  시대 : 백제 위덕왕 28년(581)
  관리자 : 선운사 

【유적내용】  사적기(寺蹟記)에 의하면 백제 위덕왕(威德王) 28년(581)에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창건했다고 하며 그 후 폐허된 것을 고려 충숙왕(忠肅王) 5년(1318)에 중수했고 조선 성종 14년(1483)에 행호선사(幸浩禪師)가 9층석탑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재건하기로 하여 성종의 숙부 덕위군의 후원으로 조선 성종 4년(1473)부터 공사를 시작하였다. 1475년에 2층대방전(層大方殿), 관음전(觀音殿)이, 1476년에는 불상과 대광명전이, 1478년에는 지장전(地藏殿), 동상실(東上室), 김당(金堂), 능인전(能仁殿) 등이 완공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모두 불탔으나 광해군 5년(1613) 무장현감 송석조(宋碩祚)가 원효대사와 함께 재건을 도모하여 3년 동안에 대웅전, 만세루, 영산전, 명부전 등 지금의 건물들을 건립하였다.
- 만세루(유형문화제 제52호)
백제 위덕왕 28년(581)에 검단선사가 선운사를 창건하면서 건립했다고 하는데 지금 건물은 광해군 5년(1613)에 중창했다. 정면 9칸, 측면 2칸 맞배지붕 건물이고 건평은 214.5㎡(65평)이다.
- 도솔암 마애불상(보물 제1200호)
백제 위덕왕이 검단선사로 하여금 암벽에 불상을 조각케 하여 40m의 암벽 상단에 동불암이라는 공중 누각을 건립하였는데 지금은 누각이 붕괴되고 기둥이 박혔던 흔적만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머리와 가슴, 손까지는 뚜렷하게 양각되었으나 그 이하는 자세하지 못한 상태인데 높이는 13m, 폭은 3m이다.
- 창당암 대웅전(보물 제803호)
백제 위덕왕(581)때 신라 진흥왕의 왕사(王師) 의운국사가 창건한 이래 고려 충숙왕 16년(1229)에 중수했고 조선시대에도 중종, 인조, 경종, 영조 때에도 중수하여 현존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 맞배지붕인데 건평은 82.5㎡(25평)이다. 고려시대의 부재 일부가 계속 이용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참고문헌】 전라북도, 1990, <<사찰지>> ;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 전라북도편



전남 강진 월남사




'priva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보고 싶은 사찰  (0) 2013.02.16
계획의 힘!  (0) 2013.01.25
Posted by Corealight

댓글을 달아 주세요

햇볕정책에 대한 생각

politic 2013. 2. 12. 19:50 |

진보에서 옹호하고,

보수에서 반대하는,


[북한 퍼주기] 햇볕정책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IMF구제금융지원으로 대표되는 한국경제의 암흑기를 어느정도 빠져나오자 마자 민주계열 DJ정부에서 추진된 것이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 일명 [퍼주기]였습니다.

통제되지 않는 벌목으로 인해 꾸준한 강수량에도 불구하고 수자원의 고갈이 발생해 매년 극심한 가뭄을 격고 그에따른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정권이 갑작스레 변동이 생기거나 혹은 극단적선택을 하여 이웃한 한국에 피해를 줄것을 염려한 것에서부터 출발한,

북한정권 안정시키기 작업

이 바로 햇볕정책이죠.


물론, 그 안엔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적관점과 한민족이라는 민족성에 따른 동질감에서 나온 가족애도 명목상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알려진 주된 목적은 [북한정권에 대한 지원]인겁니다.

그리고 진보는 반공세력에 대한 태생적인 거부감에 힘입어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나섰고,

보수는 으례히 반공에 기초하여 북한정권을 돕는 햇볕정책을 반대하고 나섰죠.



그런데,

햇볕정책이 원하는 것이 정말로 북한정권의 안정과 그에따른 한반도 정세안정이다 라는 것에 대해 [과연 그것뿐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북한에 대한 관대한 입장과 인도적 지원을 국가대북정책 기조로 삼으면서,

김대중정권과 노무현정권을 거치면서 정작 필요한 군사적 대치상황을 조금이라도 풀어보려 노력한적은 없었다는거죠.


이미 북한이 전쟁수행능력을 상실했다라고 판단하면서도 국방투자는 적극적으로 이행했습니다.

북한이 그 많은 인민군의 무장도와 훈련도, 보급을 충실히 이행한다는 건 불가능이죠. 비슷한 경제력의 아프리카 국가인 튀니지와 비교해도 겨우 오만명수준의 군대도 현대화하지 못하는데 명목상으로 백만이 넘어가는 정규군과 수백대의 항공기 규모를 유지하는 북한군이 제대로된 전쟁수행능력을 유지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건 어불성설이죠. 사실상 인민군은 이름만 군대인 노동력집단에 불과합니다.

정말로 통일을 목적으로 남북화합을 원해서,

중간과정으로 북한정권의 안정을 원했다면, 또한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체계를 갖춰나가길 원했다면,

군사적 마찰을 피하면서 상호 휴전선부근의 대치병력감소를 위한 노력을 조금이라도 했어야 했다는거죠.

지금의 휴전선 부근의 엄청난 병력은 북한의 도발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서,

언제든 휴전선을 돌파해 북쪽 영토회복을 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겁니다.

북한에 먹을것이니 입을것이니 돈이니 주고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엄청난 전력으로 국경을 꽉 틀어쥐고 위협하며 군사적 대치를 유지하고 있었던겁니다.


결국 햇볕정책을 시행했다고는 하지만,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둘 다 북한이라는 국가의 [정상화]보다는 [현행유지]를 바랬다고 봐야 옳다는 겁니다.

그래서 탈북자들과 반공주의자들은 햇볕정책이라 하면 질색을 하는겁니다.

민족의 동질성도 결여되어있고, 인도주의적이지도 않기 때문이죠. 

북한에 살고있는 민족이 해방되기는 커녕,

어디까지나 북한의 독재자인 곱슬머리 김씨일가에 대한 지원이기 때문입니다.


햇볕정책이라는 타이틀로 진보에서 칭찬받고, 보수에서 욕듣는 민주계열인데,

왜 속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알고보면 북한주민들에게 몹쓸짓 하는]이해안가는 대북정책을 펼쳤을까요?

그리고 왜 반공세력이 죽어라 햇볕정책을 반대하는 걸까요?

[퍼주기]라는 이해없는 비판으로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일베따위의 무리들 말고,

진짜 반공세력들이 왜 반대의 입장을 넘어서서 목에서 피를 토하며 반대하는 것일까요?


사실은,


민주계열은 패권주의를 기조에 두고 있기때문입니다.

우습게도 민주계열은 제국주의를 기반으로 한 세력입니다.

강한 한국을 간절히 원하죠.

미국에 종속된 안정보다,

미국과 동등한 입장에서의 긴장을 원하죠.

수출로 먹고사는 작은 무역국가 한국보다는,

안정된 내수를 바탕으로 세계의 자원을 소비하는 경제를 주도하는 대한민국이 되길 원합니다.


대한민국의 군사력이 본격적으로 대외활동을 시작한게 언제부터라고 생각하십니까?

월남전? 아니면 동티모르?

아닙니다.

물론 파병이 된 것은 맞으나,

월남전 파병의 명분은 어디까지나 냉전시대의 사상적인 관점이었고,

스스로의 의지보다 거듭되는 인명손실에 부담을 느낀 미국의 요청과 양보로 이루어 졌습니다.

당시 강력한 북한과의 대치상황에서 대규모 해외파병은 사실상 불가능이었습니다.

미국이 파병으로 생긴 구멍을 대신 막아주겠다고 약속하고, 또한 향후 군사지원을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말이 있고서야 파병을 결정하죠. 어디까지나 전투에만 참여하는 한시적인 파병이었습니다.

동티모르 역시 마찬가지죠. 국제사회에 동참하기 위한 순수한 인도적 파병이었습니다.

두 파병 모두 대한민국의 군사력이 현지에서 영향력을 가지지 않은, 그저 미국에, 유엔에 군사력을 빌려준 용병활동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민주계열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고립주의의 한국은 확연히 바뀝니다.

굳은 간섭주의와 팽창주의하에 외교를 시작하게 되는거죠.

이라크파병에 대해 노무현정권이 미국의 요구에 어쩔수 없이 파병했을꺼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사실 노무현정권의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 중 가장 적극적으로 파병을 원했었고, 미국을 제외한 두번째로 많은 규모로 파병한 나라입니다. 미국의 파병요구에 보수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민주계열은 반대할듯 하지만 실은 그 반대였습니다. 물론 진보는 반대했지만, 민주계열은 가장 적극적으로 찬성했고, 보수는 그저 미국에 눈치보여 끌려다닐뿐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더우기 주둔지 역시 미국과 가까운곳, 또는 미국과 함께 작전하기 좋은곳이 아닌,

동떨어진 광대한 지역 하나를 통째로 책임지게 됩니다.

지역정치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지역치안안정활동이라면서 지역 영향력있는 인물들의 호위를 도맡아서 했습니다. 인도주의적 활동이라면서 건설장비들을 대거 투입하고 국내기업들을 끌어들여 지역재건사업을 독점했지요.

사실 한국군 주둔지는 전쟁의 피해를 입은곳이 아닙니다. 그럼 그 재건사업이 뭘까요? 결국 개발사업이었죠.

결국 이라크 파병은 대한민국의 이익을 위한 해외로의 첫번째 군사력 투사입니다.


민주계열이 간섭주의집단이다라는걸 증명하는 또하나의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대조영, 태왕사신기, 주몽 등등 고구려의 역사를 재조명 또는 확대하거나 화려하게 연출한 드라마들이 언제 나왔을까요?

바로 DJ와 노무현을 거치면서 주구장창 쏟아져 나왔습니다.

강한 고구려에 대한 동경으로 강한 대한민국에 대한 열망이 국민 모두에게 깊숙히 잠재하게 된 것이 우연일까요?


왜 하필 반기문씨가 한국을 대표해 유엔사무총장에 앉았을까요?

반기문사무총장은 자신의 인장에 삼족오 문양을 넣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DJ를 통해 출세한 인사이죠.


우리가 감명받았던 노무현의 대표적 연설들에서도 드러납니다.

자주적인 한국과 강한 한국을 외쳤지요.

또한 FTA의 필요성을 강변하고 이라크 파병을 강력히 요구하는 간섭주의에 기반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해군의 대형함정 건조계획을 확대하고 전략무기도입을 추진했습니다.


이명박이 주구장창 해외로 돌며 세일즈를 하고 다니지만,

그보다 더 적극적으로 돌아다닌건 김대중과 노무현입니다.

각국을 돌아다니며 자원외교를 펼쳤죠.

이명박은 [미국의 우방국]이라 할 수 있는 국가들을 방문하는것에 그쳤지만,

김대중과 노무현은 공산국가와 독재국가, 미국과 반목하는 국가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자원이 있는곳, 노동력이 있는곳은 재벌들을 이끌고 어디든 찾아갔죠.



카다피의 리비아가 유지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뭐였을까요?

우습게도 외국기업들이 카다피를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몇 되지 않는 정규군을 가졌지만, 그보다 더 많은 용병들이 각국 기업들에 의해 고용되어 있었고,

그 기업들이 카다피를 지지했습니다.

자원개발권을 카다피일가가 독점하고 있기에 그들에게 로비만 하면 얼마든 리비아의 국부를 가져올 수 있었기 때문이죠.

한국도 리비아 투자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많은 투자를 해왔습니다.

혁명이 일어나던 순간만 해도 열댓군데에서 한국업체들이 공사를 하고 자원개발을 하고 있었죠.

반대로 리비아의 혁명이 시작된 이후 프랑스가 적극적으로 반군을 지원한건 무슨이유였을까요?

프랑스는 친미주의자인 카다피와 그리 친하지 못했던지라 자원개발권에 있어 항상 뒷전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막상 혁명이 성공하고 카다피 대신 들어선 반군정권은 프랑스에게 큰 이권을 주면서도 카다피를 지원했던 한국을 비롯한 영국 등의 기업들에게도 관대합니다.

결론은 하나뿐입니다.

[한국기업은 양쪽 다 뒷돈을 대어줬다]


자, 이걸 그대로 한반도에 가져와 봅시다.


DJ정부와 노무현정부는

북한정권이 붕괴되길 원하지 않는다.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하겠다

이 두가지 기조를 가지고 대북정책을 펼쳤습니다.


금강산개발, 개성공단조성으로 엄청난 자금이 북한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만,

아주 원활한 합의과정을 통해 당연하다는듯이 철저히 외부와는 통제된,

군대로 둘러싸인 경제특구가 만들어졌습니다.

싼 인력을 공급받는 대가가 모두 김씨일가에게 돌아가게끔 되어있는 구조로 말이지요.

이명박 정부가 만약 햇볕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하더라도 북한이 경제를 개방하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절차를 시행했을거라고는 전혀 생각치 못하겠습니다.

국경을 틀어쥐고 인민들을 쥐어짜고 얼토당토않은 규모의 군대를 끌고가면서도 현행유지가 가능하게끔 대한민국이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죠.


민주계열이 북한정권에 대한 지원으로 얻고자 한 것은,

북한에 대한 통제권이었습니다.

북한이 아무리 군사적도발을 하려손 쳐도,

자멸을 바라지 않는 이상, 어찌되어도 작은 규모의 국지전에 불과한 것인 반면,

햇볕정책이 지속되어 북한정권의 한국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한국정부는 북한의 명줄을 틀어쥐게 되는것이죠.

장기적으로는 어찌될 지 모르겠지만, 당장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국경을 위협하고 있으면서도 경제적으로도 명줄을 잡고가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중국이나 동남아처럼 금새 성장해서 세계시장에서 도전해오는 한시적인 골칫거리 노동시장이 아닌,

어디까지나 값싸고 거기에 말도 통하면서 노동조합이니 뭐니 신경안써도 충분한 노동력 공급처를 독점할 수 있게 되는겁니다.

충분한 군사투사력으로 통제가 가능하면서 싼값에 인력을 쓰는 국외지역.

바로 [식민지]죠.


민주계열의 꿈꾸는 한국은 이렇습니다.

국가경제규모를 키워 소비중심의 내수로 기반을 잡고,

북한을 비롯한 경제식민지의 자원과 싼 인력을 이용하여 부품을 생산,

국내에 들여와 조립하여 부가가치를 부여해,

국내에서 풍족하게 소비하며 또한 남는것은 경제식민지에 비싼값에 팔아먹는것.


대한민국 국민에게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핑크빛미래지만,

과거 제국주의 경제구조와 다른점이 뭘까요?


아, 물론 일본 민주계열도 이걸 꿈꿉니다.

중국 공산당 역시 지금은 몰라도 미래엔 똑같은걸 꿈꿉니다.

그래서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한중일 삼국의 자원외교전이 아주 치열하죠.


그리고 미국은 지금 그렇게 먹고살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도 각국에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연구인력과 같은 주요인력은 국내에 묶어두고 어디까지나 공장만 내보내고 있죠.

하지만 경제식민지라 할만한 곳은 없습니다. 마음껏 석유든 뭐든 가져올 수 있는 땅이 없죠.

그래서 DJ,노무현정부는 햇볕정책 외에도 적극적으로 FTA를 확대해 나간겁니다.

우리가 우려하는 일명 독소조항도 미국과의 협상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입니다.

ISD를 먼저 조항에 집어넣은게 어디일까요? 한국정부입니다.

미국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크다지만, 잠재적인 시장까지 포함하면 미국시장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미래시장과의 FTA에서 독소조항을 집어넣기 위해선 미국과의 FTA를 핑계로 대어 추진하는것은 아주 좋은 전략이죠. 더우기 민주계열은 기간사업의 민간이전을 반대하는 입장이기에 ISD를 비롯한 독소조항의 위협에서 사실상 자유롭기도 했지요.


그리고 한국은 인구가 너무 적습니다. 내수를 뒷받침할 인구가 늘어나기는 커녕 조만간 줄어들 판이었죠.

부족한 인구를 늘리기 위해 미국이 행했던 정책이 뭡니까? 이민정책이죠.

DJ정부와 노무현정부가 외노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건 이런 이유입니다.

한국 국적취득이 쉬워지고 체류또한 쉽게 허가해준것은 이런 이유이죠.

DJ와 노무현은 작은 미국을 원했던 겁니다.


아무튼,

이렇게 생겨난 해외생산기지는 어디까지나 싼 노동력에만 가치가 부여되죠.

당연히 한국의 기업들은 외국에 건설한 생산기지에서 노동력 단가가 올라가거나, 혹은 단가가 올라갈 요소가 발생하는 것에 대해 매우 인색합니다.

물론 국내사업장에서도 임금인상에 매우 인색하며 노동자들과의 타협보다는 공권력에 기대어 탄압하고 있지만,

외국에서의 한국기업의 태도는 상상을 불허합니다.


대표적 사례로 태국과 말레이시아에서의 삼성의 행동을 볼 수 있죠.

태국과 말레이시아는 법적으로 노조활동이 가능하게끔 되어있지만,

유독 삼성의 사업장에는 노조가 없습니다.

물론 한국내 사정도 비슷합니다만, 최소한 노조가 없는 대신 업계최고수준의 임금지급이라는 보상책이라도 있죠.

하지만 태국과 말레이시아는 사정이 다릅니다.

그냥 정부가 삼성사업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노조설립을 허가해주지 않을 뿐입니다.

한국에서야 돈이라도 많이 준다지만,

그쪽 나라에선 그런것도 없이 그냥 허가를 안해줍니다.

관료들에게 뒷돈을 대어주고,

커다란 공장으로 지역세입도 보장해주는데,

어느누가 테클을 걸겠습니까.

한국에서처럼 다른 기업들과의 경쟁이 있는것도 아니고,

깨어있는 지식인들의 비판에 몸사려야 하는것도 아니고,

국민 눈치보느라 가끔씩 감옥에 들락거려야만 하는것도 아닌지라,

우리가 욕하는 국내의 삼성의 모습을 훨씬 뛰어넘는 침략을 3세계 국가에서 행하고 있죠.

그리고 거의 모든 한국의 3세계 진출기업들의 모습이 이와 다를바없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미디어에서 접하는 해외진출기업의 모습은 사실 이와는 다르기에 갸웃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미디어에선 못사는 이들에 대한 지원, 현지기업의 낙후된 것과는 사뭇다른 청결하고 진보된 노동환경, 좋은 재질과 뛰어난 기술로 만들어져 공급되는 제품, 해당기업으로 인해 도시가 발전했다며 아주 기뻐하는 지역정치인의 인터뷰...

하지만, 잠시 눈을 돌려보면,

노동자의 지지를 기반으로 체제를 유지하는 중국 공산당의 꽤 까다로운 관리하에서조차 한국기업은 노동자에게 가혹한 노동과 낮은임금을 제공한다며 가오리빵즈라고 욕하지 않던가요?


그리고 이걸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더 나아가 같은 민족이라는 북한에게도 적용하려는게 민주계열이었습니다.

자꾸만 요구사항이 늘어나고 골칫덩어리이자 자꾸만 발전하려드는, 그래서 미래의 경쟁자가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한시적 노동시장을 자꾸 유지하고 더우기 원거리 이송으로 물류비를 감수해야만 하는 멀리 타국에 비해,

가깝고 완벽히 통제된 개방조차 하지 않은, 마치 1800년대 조선말기를 보는듯한 낙후되고 미개하면서도 같은 문화권에 같은 언어를 쓰는 북한이라는 나라를 훌륭한 식민지 대상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민주계열은,

[대]한민국이라는 국명에 정말로 어울리는 집단이고,

자국민에 인자하며 타국인에게는 냉혹한 집단입니다.


그럼 그에 맞서는 한국의 보수집단은 어떠할까요?

재미있는건 한국의 보수집단이 인도주의를 기반으로 한 착한집단이라서 민주당에 맞서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미국의 보수당과 한국의 민주당은 정책기조가 비슷합니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하고 국력신장을 추구하죠.

다른점은 딱 하나뿐입니다. 

복지부분. 

군대유지를 위해 재정적자를 해결코자 복지를 줄이는 미국보수와 복지를 늘리고자 하는 한국민주. 여기에서 파생되는 과세정책과 경제정책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정책이 사뭇 달라보일 뿐, 둘 다 국력의 팽창을 최우선 합니다.

반면 한국의 보수세력은 매우 견고한 고립주의에 갖혀있습니다.

그간 미국의 보살핌 아래 미국시장에서 충분한 활동을 보장받아서 딱 그만큼 경제성장을 이뤘고, 딱 그만큼 안정된 사회를 보장받았기에, 새로운 변화를 기피하는 것이죠.

겨우 그정도 수준의 보수일 뿐입니다. 현실에 안주한 기득권집단일 뿐이죠.

그래서 미국의 심기를 어지럽힐 해외진출로 인한 마찰에 두려워하고,

혹여나 미국이 오해할까 싶어 해군함정의 대형화도 기피했고,

미국이 우산을 조금이라도 걷어갈까 싶어 전략무기 도입도 거부하죠.

그저 미국의 동북아전략에 따른 강한 육군전력만을 보유하길 원하는 겁니다.

미국을 대신해서 직접 피를 흘려줄 육상전력만 가지는 것으로 만족하는 겁니다.

그래서 팽창주의이자 제국주의집단인 미국 보수당과 아주 죽이 잘 맞아 떨어지는 겁니다.

충실한 개노릇을 하는거죠.

반대로 고립주의를 표방하고 외국에 대한 간섭을 자제하고자 하는 미국의 민주당을 한국의 민주계열은 아주 반깁니다.

그만큼 생기는 빈자리에 한국이 끼어들 수 있거든요.



자 다시 햇볕정책으로 돌아와서,


미국이 현재 유지하고 있는 동북아전략에서의 한국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강력한 육상전력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이 한국의 경제식민지가 되어버린다면?

또한 한국이 강력한 해상전력을 가지게 된다면?

말 그대로 중국과 한국 사이엔 거대한 완충지대가 생겨버리며,

정치적으로 중국과 한국은 맞닿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굳이 한국을 건드려서 한국이 미국의 품에 틀어박히게 하지는 않겠죠.

결국 대중전략은 수정될 수 밖에 없을겁니다.

뭐, 필리핀과 대만, 일본으로 이어지는 군도들로 태평양을 못나오게 틀어쥐고 있으니 미국이 별 상관 안하겠지만,

또한 이미 DJ와 노무현을 거치면서 미국이 파트너로 인정한 상황이지만,

정작 한국의 보수세력은 미국이 떠날까 겁을 냈죠.


결국 햇볕정책은 한국이 미국의 품을 떠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는 첫걸음이었던 겁니다.

또한 한국식 제국주의의 첫걸음이었죠.

앞서 말했듯, 관대한 미국은 이에 동의합니다. 

미국 혼자의 힘으로 세계를 통제하겠다며 내건 세계경찰역할에 이미 지쳐가던 참이었으니 말이죠. 더우기 전면전이 불가능한 중국과의 관계에서 더이상의 강대한 육상전력은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그저 다른세력으로서 중국과 미국사이의 완충만 해준다 해도 문제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중요한 [믿을 수 있는 파트너]로서의 한국을 인정하고 문제가 되었던 전작권도 되돌려주려 합니다. 조기경보기와 무인정찰기도 팔겠다 했으며 이지스시스템도 팝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이명박정권이 들어서면서 완전 말아먹고 맙니다.

보수세력을 등에업은 이명박정부는,

전작권도 다시 미국에 가져다바치고,

무인정찰기도 안사겠다하고,

이지스함 등 대형함 건조대수도 줄이고,

더불어 햇볕정책을 비판하며 바로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을 끊죠.

꾸준한 자금공급을 통해 연명하던 김씨일가는 [종주국]인 한국에 이런저런 투정으로 고속정도 내려보내고 잠수함도 보내고 포탄도 날려보냈지만,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자 새로운 종주국을 찾아나섭니다.

그리고 중국과 인접한 곳에, 러시아와 인접한 곳에 새로운 [조차지]인 경제특구를 내어주죠.

한국에 내어줬던 금강산과 개성공단 [조차지]을 몰수하겠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실제 금강산은 몰수한 상태입니다.


민족주의 혹은 인도적인 관점에서 햇볕정책은 비판의 대상이 되긴 합니다.

일베같은 병맛집단에서 이야기하는 퍼주기?

그딴건 애초에 없었습니다. 그게 퍼주기면 과거 제국주의시절 유럽 열강은 세상을 풍요롭게 했고, 일본도 한국과 만주를 먹여살렸다고 이야기하는것과 다름없습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초등학생수준의 상식으로 이야기하는 가치없는 소리인거죠.

햇볕정책은 그딴 개소리로 비판할게 아닙니다.

과연 한국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냉혹한 제국주의로서 타국에서 이득을 뺏어올 수 있느냐라는 관점에서 비판이 가능한 사안입니다.

비판을 한다면 우리가 일본에 그토록 당해놓고서, 일제의 인간의 존엄성을 헤치던 극악무도한 행위는 이루어지지는 않을지라도, 일제치하에서 격은 국부반출에 버금가는 수탈을 타국에 가하는 것이 옳으냐? 우리가 그만큼 이기적일 수 있느냐? 라는 관점에서 비판해야만 하는겁니다.


그리고 그만큼 국익에 있어서는 이기적일 수 있다고 보는 이들에게도,

미국도 유럽도 여전히 행하고 있는, 그리고 이미 우리도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해먹을만큼 해먹고 있는 행동을, 

[옆에 있는 가난한 나라 북한]에 다시한번 적용하는것으로 보고 찬성을 할것인지,

아니면, [우리 핏줄, 우리 민족, 언젠가 통일해서 함께해야 할 동족]으로 보고 민족해방, 민족통일을 위해 반대할 것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하는 것입니다.


진보이기에 햇볕정책을 지지한다.

북한주민을 위해 햇볕정책을 지지한다.

통일을 위해 햇볕정책을 지지한다.


알고보면 [퍼주기]만큼이나 잘못된 생각일수도 있습니다.


오유펌 


Posted by Corealight

댓글을 달아 주세요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한국축구의 열정 - 손흥민 is all in (2)
손흥민은 기적을, 아버지 손웅정은 손흥민을 만들어냈다.

 

손흥민에 대한 축구 팬들의 관심이 나날이 커지는 가운데, 손흥민 뿐만이 아니라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아디다스 동영상에서 보셨죠?
“아버지는 그런 내게 직접 훈련 노트를 그려주시며, 모든 동작들이 내 몸에 새겨질 수 있도록 지켜봐 주셨다.”
얼마 전에는 TV에서 손웅정과 손흥민의 다큐가 방영되어 회자가 되기도 했었죠. 스타들의 열정을 넘어서는 아버지의 열정이 여기에 있습니다. 아버지 손웅정과 손흥민의 열정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손흥민의 열정 이야기 (1) 보러가기 ☞



내가 공을 찼던 내용이 너무나 싫다.
손웅정은 프로 선수였습니다. 1985년부터 1999년까지 상무, 현대 호랑이, 일화 천마에서 활동했죠. 그러다 부상을 입고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습니다.
손웅정은 자신의 축구 경력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제가 스스로 진짜 선수 생활할 때도 제 스스로 불만이 정말 많았어요. 공을 제대로 못 다루니까. 제가 공 찼던 내용이 너무나 싫어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만큼은 나와 정반대의 시스템을 갖고 가르쳐야겠다. 그리고 일단 축구 선수는 공에 비밀이 있는데, 공을 못 다루고 어떻게 축구를 하겠느냐. 아, 그걸 극복하는 건 기본기 밖에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커대디, 손웅정
어느 일간지에서 손웅정을 사커대디라 부르더군요. 손흥민이라는 신예 스트라이커를 키워낸 것에 대한 예찬이자, 더불어 체계적인 훈련 방식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사커대디라 부른 것이겠죠.
지난 2월에는 손웅정의 제자인 김병연(16세)이 함부르크 유스에 입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시금 손웅정 씨의 지도력이 빛을 발했었죠.
손웅정 씨의 훈련 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합니다.
기본기. 무조건 기본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기본기라는 것이 말처럼 쉽게 쌓이지가 않잖아요.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이면 실전에 나가서 시험해 보고픈 것이 사람 심리이고, 기본기는 하다보면 느는 것이라고들 생각하기 일쑤니까요. 하지만 연륜이 있으신 어르신들은 언제나 말씀하시죠.
“기본기가 중요하다.”
손웅정 씨는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지만, 남들처럼 기본기를 착실히 쌓기보다는 실전에서 감각을 익히려 했었답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후회를 하게 되죠. 그래서 시작된 것이 아들 손흥민의 기본기 훈련이랍니다.




 

손흥민으로서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거예요. 멋지게 드리블을 해서 슛을 넣길 바랐는데, 하루 종일 몸에서 공이 떨어지지 않는 연습만 하니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하지만 손흥민은 아버지 손웅정을 신뢰했고, 손웅정은 열정으로 손흥민에게 보답했답니다. 학교보다 20배 이상 빡빡한 훈련을 진행할 때마다 손웅정은 손흥민과 함께 했습니다. 여느 부모들처럼 공부하라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곁에서 함께 공부했다는 거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손웅정은 손흥민의 훈련 노트를 그려주었고, 모든 동작들이 손흥민의 몸에 새겨질 수 있도록 지켜봤습니다. 아니,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함께 뛰었습니다. 벌써부터 부모님들의 눈에 불이 켜지는 것이 보이는 것 같네요. 당장 내 아들, 딸과 함께 합숙 훈련을 하리라,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잠시 진정해주세요.^^a 손흥민이 손웅정의 훈련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은, 축구에 대한 손흥민의 열정이 손웅정 못지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너희가 기본을 아느냐?
김병연은 손웅정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죠.
“미니게임, 슈팅 연습도 없이 2시간 동안 리프팅만 했습니다. 훈련 내내 볼 컨트롤만 배우니 조바심이 나더군요.”
1년 남짓 손웅정 감독에게 기본기를 배운 김병연은, 여느 젊은 선수들처럼 시합 경험을 쌓고 싶어서 축구 명문 중학교에 진학하게 된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죠.
“중학교에 가서 기본기가 왜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손웅정 감독님께 기본기를 1년밖에 배우지 않았는데도 내가 기본기가 뛰어난 편에 속하더군요. 학교에선 볼을 다루는 훈련보다는 체력위주의 훈련이 많아서 부상이 잦았습니다. 그럴 땐 학교에 휴가 쓰고 춘천에 가서 손웅정 감독님께 훈련을 받곤 했습니다.”
손웅정 감독에게 아이를 맡긴 학부모들은 김병연과 똑같은 생각을 하곤 합니다.
‘언제까지 기본기를 익혀야 하지? 다른 아이들처럼 시합에 나가서 입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경력이 쌓이고, 좋은 고등학교와 클럽에 들어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손웅정은 학부모의 요구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기본기였죠. 공을 다루지 못하는 선수는 시합에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어떤 선수는 2년 내내 볼 트래핑을 한 이후에야 시합에 나갈 수 있었으니, 손웅정 감독의 엄격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프리시즌에서 9경기 9골을 넣어, 함부르크 SV 팀 내 최다 골을 기록!
무적함대 첼시와의 경기에서 역전골!
18세 분데스리가 데뷔골(팀 내 최연소 기록)!

신예 스트라이커 손흥민의 기록 행진은 기본기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지겹도록 반복됐던 기본기 훈련이 오늘날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8살 때 축구를 시작해, 첫 시합을 뛰기까지 8년이 걸렸고 매일 한 시간씩 볼을 몸에서 떨어뜨리지 않는 훈련을 거듭해 오던 어느 날, 날아드는 공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손웅정, 손흥민 부자의 열정.
우리네의 부모님들은 ‘공부하라’는 말을 쉽게 합니다. 하지만 ‘공부하자’라고 말하는 부모님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기본이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분은 많지만, ‘기본을 지키자’고 몸소 보여주시는 분은 보이질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가 공부에도 기본에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일 테지만요. ^^a
당신의 열정은 어디에 있나요? 부모님의 말 속에 담겨있습니까? 아이의 미래에 있습니까? 나와 부모님, 혹은 나와 아이가 함께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열정적으로 달려 나가는 일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일어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손웅정과 손흥민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현실로 만들어냈죠. 부자가 똑같은 열정을 품었거든요.^^b
타인의 삶을 생각하기에 앞서서, 자신부터 돌아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열정은 어디에 있나요?


Posted by Corealight

댓글을 달아 주세요

무료 웹 메일 계정들

etc 2013. 2. 9. 10:38 |

마이크로소프트 outlook.com


구글 gmail.com


오페라 opera.com (블로그 기능도 제공 : 쓸만함 , 조만간 HTML5 수정 기능도 지원될 예정이라고 .. )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병헌  (0) 2013.03.11
김태균, 인사관리법 “한 번에 판단하지 않는다”  (0) 2013.03.08
세상은 넓디넓고 또라이는 무진장 많다  (0) 2013.03.06
무료 웹 메일 계정들  (0) 2013.02.09
가축 잡는법  (0) 2013.01.31
보석의 종류  (0) 2013.01.29
Posted by Corealight

댓글을 달아 주세요

13. 2. 9. 네이버 블로그 :: 포스트 내용 Print


[ 회 계 사 공 부 를   시 작 하 기   전 에 ] 회 계 사 의   진 로 ( 5) 회계

2012/04/10  16:39


무료전자책이라고 합니다. . .  개인적으로 회계사의 산증인이라고 생각하는 분인데 

시간되시는 분들은 한번 읽어보시면 업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무 료 전 자 책   < 리 더 를   읽 다 >   한 국   회 계 사 의   거 목 ,  김 일 섭   전   딜 로 이 트 안 진

회 계 법 인   회 장    무료/ 자율정가 전자책

13. 2. 9. 네이버 블로그 :: 포스트 내용 Print



* [리더를 읽다]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리더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일과 삶을 통해 삶의 지혜를 전하는 프로

젝트 인터뷰입니다.  [리더를 읽다] 김일섭 원장편에서는 국내 최고의 회계전문가로 불리며 삼일회계법인을 업계 1 위

로 이끌었던 김일섭 원장의 치열하지만 유쾌한 성공 스토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출판사 [아이웰콘텐츠]가 기획하고

전문 작가가 구성한 리더들의 스토리를 1 등 전자책 서비스 [리디북스]의 무료 전자책으로 만나보세요.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책소개]

한국 회계의 살아있는 역사,  한국형경영연구원의 김일섭 원장을 읽다.

국내 최초로 회계법인에 경영컨설팅을 도입한 개척자,  김일섭 원장.  기업의 의사가 되고 싶었던 청년 시절부터 한국형

경영 연구에 도전하고 있는 지금까지,  김일섭 원장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그의 성공 비결과 철학을 이해

하게 된다. ‘ 언제고 늦은 때는 없다. ’ 슬로우 스타터 김일섭 원장이 전하는 진정한 몰입과 도전에 대해 들어보자!

“회계 분야 종사자들이 한번쯤 꿈꾸는 그의 화려한 이력은 저절로 생기지 않았다.  혹독한 몰입의 시간을 이겨낸 결실이

었다.  올해 예순 다섯.  지금도 그의 눈빛은 다음 1 0 년에 대한 계획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

[목차]

13. 2. 9. 네이버 블로그 :: 포스트 내용 Print


들어가며

그의 이야기

그에게 묻다

덮으며

부록:유일한,  빌 게이츠,  워렌 버핏의 공통점

김일섭 원장 약력  ​

리디북스 <리더를 읽다> 바로 가기

http://ridibooks.com/pc/detail.php?category=9000&id=111000774&p_gb=1  

Posted by Corealight

댓글을 달아 주세요

회계사 연봉

my major 2013. 2. 9. 08:34 |

[회계사공부를 시작하기 전에]회계사 연봉과 기초준비 3

자, 그럼 많이들 궁금해하시는 연봉이야기를 해볼까요 
 
적나라하게 fact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제가 받았던 연봉을 말씀드리는게 가장 정확할 거 같군요
 
 
초봉은 제가 스페셜(보너스입니다) 빼고 약 3500만원으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2005년도였으니까
그때 스페셜이 약 300만원 정도 나왔으니까 3800만원이고 기타 선택적복지 50만원/상품권 설추석 약 20만원
그리고 출장시 받는 per diem이 하루에 약 3만원으로 출장횟수마다 받았구요
야근시 택시비는 나오고 점심 저녁은 주로 클라이언트에게 청구하기 때문에 밥값은 거의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야근시에만요)
 
 
2006년은 인상률이 약 8%정도였던거 같고 스페셜 포함해서 약  4000-4200만원정도였습니다.
 
회계사생활은 회계법인에서 2년근무를 하게 되면 드디어 "수습"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한국공인회계사회라는 협회가 있어서 저희가 2년동안 어디서 어떤 업무를 했는지 보고를 해야하구여
2년이 완료되면 협회에 등록비를 약 200만원 정도(회사에서 내줌)내고 "등록" 공인회계사가 되고 비로소
공인회계사 등록증이 나와서 개업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때 저때까지는 세무사 자격증이 같이 나왔어요... 얼마전부터는 세무사법개정으로 회계사한테 자동으로 자격증이 안나온다고 하던데요
 
그리고 등록회계사이기때문에 3년차 부터는 감사보고서발행시 책임을 지게 되구여
그러나 그에 상응하지 못하는 급여를 받게 됩니다. 스페셜제외 약 1,000만원 정도 더 주는 것 같더라구여
그리고 스폐셜도 1,2년차보다 훨씬 많이 받게 되어 2년차때 400정도 받았다면 800만원-1000만원정도를 보너스로 받게 됩니다.
다 합해서 3년차때는 약 6천만원을 수령했던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자격증 공부로 다 끝났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여기서 좌절을 하셔야합니다. 사실 회계사만으로 돈을 많이 버는 세상은
이미 1,000명이상 뽑을때부터 끝났구여 변호사도 요즘 시장에 공급이 많다고 하는데...
회계사로서의 장점은 업무능력과 검증받은 지식 그리고 퇴직후 개업가능성 이런 것이지만 평생보장 이정도는 아닌것 같습니다.
 
제가 4년차때 나왔기 때문에 4년차때는 6천5백만원정도로 찍고 나왔는데요
 
이런 수치는 개별 회계법인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릅니다. 여기서 +/- 20% 그리고 예전수치이니까 물가상승률 고려하시면
어느정도는 맞추실수 있을 겁니다.
 
스텝->시니어(3년차)->매니져->디렉터(약10년차)-> 파트너(약12년-15년차)
 
이러한 순서에서 디렉터정도 되시면 1억 1천-2천만정도 생각하시면 되구여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파트너는 처음에 지분없는 파트너가 되시면 초봉 1억 2천정도 그리고 올라갈수록 다른 퇴직하는 파트너지분을 돈 주고 사서 지분을 늘려가시면서 배당으로 많이 받아가는 구조인것 같습니다.
 
전무급정도 되면 연봉 2.5억에 배당이 1-2억정도 되시는 것 같고 본부장은 약 10억 -30억 그리고 대표이사는 법인마다 다르겠지만
많이 가져가는 곳은 100억대라고도 들었습니다. (보통 전무급 나이가 45-55사이인것 같습니다)
 
파트너 되면 기본적으로 안심인 시절은 이미 지났고 영업을 잘해와야 파트너도 유지할 수 있구여 영업을 잘해와야 승진도 하게 됩니다.
결국 파트너 되는 것도 영업이지만 파트너 되서도 기본적으로 영업이 되어야합니다.
 
그리고 영어도 필수이구여
영어는 4대 BigFirm에서는 아주아주 중요합니다.
 
영어를 나중에 잘하는 게 중요한게 아니고 들어가기 전부터 아주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파트너 되기가 훨씬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죠.
 
AICPA, CISA이런건 법인에서 100%지원이 되기때문에 무조건 들어와서 따시구여
영어학원비도 80%까지는 지원이 되니까 영어공부도 들어와서 꾸준히 해야하지만
제가 경험해보건대 야망이 있으신분들은 반드시 영어는 법인입사전에 완벽히 마스터하셔야합니다.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은데 제가 만약 지금 느끼던 심정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저는 무조건 영어에 완전 올인했을 겁니다.
그리고 운동도 많이 했을 겁니다.
 
회계법인에 들어와서 운도 많이 작용하지만 튼튼한 신체와 영어(기타 조건은 다들 비슷합니다)가 제일 중요한 요소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클라이언트와의 영업이 결국 중요하기 때문에 활발한 성격 또는 최소한 매너있는 성격(이거 가장 어렵습니다 일이 쌓아기 때문에 성격좋아지기가 참) 이 있으면 회계법인에서 파트너로서 성공한 자질을 갖추신거죠
 
그래서 제가 많이 들었던 말이 회계사는 술과 영어다
그만큼 영업의 중요성과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겠죠
 
어디까지나 4대 Big Firm 이야기였고 로컬은 제가 상황을 잘 모르지만 순수한 영업이라고 합니다.
연봉이 정해진것이 없고 어차피 독립채산제 이므로 자기가 잘하면 많이 먹는거죠
빅펌은 밑의 사람이 잘해도 자기가 먹습니다. 그게 좋은거죠
단, 빅펌도 이제 디렉터숫자 파트너숫자가 거의 포화단계에 이르렀고
특히 감사본부가 아니라 컨설팅(FAS등) 본부는 경기를 많이 타기때문에 금융위기때도 많이들 해고당하셨습니다.
컨설팅본부는 회계사뿐만이 아니라 MBA다녀오신분들 해외대학출신들이 많으시거든요
감사본부는 거의 경기를 타지 않고 의무적으로 감사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안정적입니다. 대신에 업무상 재미가 좀 떨어지죠
 
그래서 3년차에 등록해서 인차지 경험하고 나면 대부분 컨설팅 FAS등에 가서 M&A 부동산 PF 등 회계응용분야로 많이 법인내 본부
Transfer를 하게 됩니다.
TAX부서도 상당히 안정적이라고들 하시는데 나중에 회사 옮길만한 곳이 별로 없다고 들었습니다.
WWW.KICPA.OR.KR의 구인구직 페이지를 보시면 회계사를 원하는 회사들의 포지션을 헤드헌터들이 매일 무수히 올리시고 있는데
회계사 공부하기전에 현실을 좀 보시고 공부하셔도 늦지는 않으실 것 같습니다.  
 
제가 듣기론 컨설팅 본부에서 회계사분들은 그나마 제일 해고리스트에서 마지막 순위로 둔다고 하시니 다행이긴한가요
또 어떤 빅4는 뉴스텝들도 금융위기때 대거 해고시켜서 욕을 많이 먹기도 했구요
 
 
현재 회계법인은 인력구조상 위 직급이 쌓이는 정체상태와 IFRS특수가 끝나 많이들 힘들어하는 모습입니다.
파트너하긴 쉽지않고 그렇다고 나이가 많아지면 쉽사리 다른 회사로 옮길수가 없으니
주로 3년차- 10년차의 이직이 많아지는 이유를 아실수 있겠죠...
제가 아는 분들 중 개업하신분들은 극히 드뭅니다. 세무사와 영역이 겹치고 이미 등록 회계사 숫자가 거의 1.6만명에 육박을 하니까요
제가 등록번호가 1만번초반이었습니다...
 
현재 상황만 말씀드린것이고 그렇다고 제가 회계사 자격증을 딴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과거에는 후회도 했으나
회사를 옮기고 나니 모든게 다 쓸모가 있더군요

[출처] 회계사 연봉|작성자 필굿


Posted by Corealigh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제목이 너무 거창한것 같습니다.

원래는 서버쪽이 아니었습니다. 최초의 주제는 "최소한으로 Ubuntu를 설치해 보자!" 였습니다. 그러나 저 말고도 서버를 관리하고 싶은데 터미널로 관리하기는 조금 힘들고, DeskTop을 설치하여 서버로 운영을 하자니 자원의 낭비가 걱정이 되시는 분들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현재 제가 하고 있는 노가다(?) 작업을 정리한 것을 여기에 올립니다.

1. Ubuntu Server 설치

제일 먼저 할일은 Ubuntu Server 10.04 (LTS)를 설하는 것입니다.
이부분에 대해서는 Internet에 많은 설명이 있기에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설치를 할때 한글상태에서 설치를 하고, 키보드는 미국으로 해 놓고 설치를 했습니다.
이 부분이 왜 문제가 되는가 하면, 얼마전에 서버를 설치하고 원격데스크탑으로 접속을 하려고 하니 기보트매핑이 다르다는 이유로 접속이 않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부분은 아직도 답을 못 찾았습니다. ㅜ.ㅜ

2. 메시지의 한글 깨짐을 보정

위의 1번 상태로 설치를 하고 나서 부팅을 하시면 TTY 1 모드로 로그인을 하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 Linux 명령을 치면 메시지가 깨져서 화면에 보입니다. 이것이 싫으신 분들은 영문상태로 설치를 하시면 됩니다.
특히 한글이 보여야 하는 부분이 apt-get 명령을 사용할때 입니다. 뭐 그러려니하고 지나가시면 되지면 그게 눈에 거슬린다면 로그인 하자마자 다음의 명령을 터미널에 써주세요.

export LANG=en_US.UTF-8

이명령 이후에는 영문 상태로 변경이 되어서 한글이 깨져 보이지 않고 영문으로 보입니다.

3. 패키지를 최신 상태로 만들고 시스템을 최신상태로 Upgrade

sudo apt-get update
sudo apt-get upgrade

이 명령도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4. 그래픽 사용자 환경 설치

우분투 Desktop에는 기본적으로 두가지 메타 패키지가 설치되는 것 같았습니다. ubuntu-desktop과 ubuntu-standard 입니다. 이중에 ubuntu-standard는 서버 버전에도 자동으로 설치가 되는것 같았습니다. ubuntu-desktop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GDM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설치할 패키지는 GDM 입니다.

sudo apt-get install gdm

GDM을 설치하고 리부링을 하면 그놈 GUI 로그인 화면이 보입니다.
Server를 설치할 때 만든 아이디로 로그인을 합니다.
로그인을 하면 두가지 문제가 눈에 보입니다.
하나는 popup창입니다. 애플릿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나중에 필요한 부분이니까 Don't Delete를 해서 지우지 않고 유지를 합니다.
두번째는 한글이 전부 깨져서 보입니다.

5. 터미널 설치

sudo apt-get instal gnome-terminal

프로그램 설치와 파일관리를 위해서 설치합니다.

6. 한글을 정상으로 만들기

방금전에 설치한 터미널을 이용하여 Un 한국어 트루타입 폰트 세트를 설치 한다.

sudo apt-get install ttf-unfonts-core

이제야 한글이 정상적으로 보입니다.

7. Synaptic을 설치하여 프로그램 설치를 편하게 하자!

터미널에서 다음 명령으로 Synaptic을 설치합니다.

sudo apt-get install synaptic

8. 로그인 후에 보이는 POPUP 에러 처리

터미널에서 다음 명령으로 Clone of the GNOME panel indicator applet를 설치합니다.

sudo apt-get install indicator-applet-session

9. 한글 번역을 마무리하기

여기까지 설치를 하고 보면 상단에 보이는 메뉴가 아직도 영어로 되어 있습니다. 이부분을 해결하기 위하여 Language selector for Ubuntu Linux를 설치합니다.

sudo apt-get install language-selector

이것을 설치하고 시스템 - 관리 - 언어를 실행시키면 나머지 부분을 설치할것이냐고 물어 봅니다. Yes를 선택하여 설치하면 상단의 메뉴가 한글로 변경됩니다.

10. 필요한 어플리케이션 설치하기

Synaptic에서 찾아서 하니씩 하나씩 설치하면 됩니다.

예) gedit, APM 서버, 한글 폰트 등등

11. Desktop 우측 상단의 네트워크 상단 애플릿 문제

Desktop 우측 상단에 있는 애플릿을 보기 위하여 network-manager-gnome : 네트워크 관리 프레임워크(GNOME 프런트엔드)를 설치 하였지만 자동으로 실행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딘가에 세팅을 해주어야 하는것 같은데 찾지 못하였습니다.

12. 원격데스크탑 연결을 위한 VNCServer 설치

Ubuntu에서는 VNCServer로 vino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음의 명령으로 VNCServer를 설치합니다.

sudo apt-get install vino

문제 : 설치는 제대로 된거 같은데 문제는 터미널 상태에서 세팅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설치만 된 상태로는 원격에서 접속할수가 없습니다. 원격 접속을 활성화 해우어야 하고, ID/Password로 접속할수 있게 해주어야 하고, 자동으로 접속이 되게 해주어야 하는데 그 설정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ㅜ.ㅜ

답변 1) gconf 설정 데이터베이스를 수정하는 방법은 몇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 gconf-editor을 이용하여 수정하기(GUI)
(2) gconftool-2를 이용하여 수정하기(CUI)

이상으로 제가 작업한 것을 두서없이 적었습니다.
부족한 부분이나 오류가 있는 부분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_________________
시간이라는 X축, 공간이라는 Y축, 사이버라는 Z축의 가상공간에서 남과 다른 나만의 정체성을 찾기위해 고민하는 자.
버텨라, 끝까지 버텨라. 삶은 버티는 것이다. 
결국 해보는 수밖에 없다.
 






--------------

ㅠㅠ

괜한 삽질을 했습니다.

한방에 해결하는 명령어가 있어습니다. ㅠ.ㅠ

sudo aptitude install --without-recommends ubuntu-desktop

한글 문제만 제외하고 이거 한방이면 거의 모든것이 해결됩니다.

언어 추가 설치하고, 29번 파일 지우면 됩니다.

어제 하루종일 난 뭐 한것일까?

_________________
시간이라는 X축, 공간이라는 Y축, 사이버라는 Z축의 가상공간에서 남과 다른 나만의 정체성을 찾기위해 고민하는 자.
버텨라, 끝까지 버텨라. 삶은 버티는 것이다. 
결국 해보는 수밖에 없다.
 





Posted by Corealight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prada 2013.05.02 18:13 Address Modify/Delete Reply

    말을 많이 한다는 것과 잘 한다는 것은 별개이다Topics related articles:


    http://methouse.tistory.com/210 新建文章 12

    http://annaplace.tistory.com/archive/201204 新建文章 7

    http://wonae.tistory.com/9 新建文章 8

    http://criticasters.tistory.com/40 新建文章 6

(원주=연합뉴스) 강은나래 기자 = 강원 원주경찰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을 과시하며 공사비 등으로 수천만 원을 뜯어낸 혐의(사기)로 황모(67)씨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고 6일 밝혔다.

영부인 김윤옥 여사의 둘째 형부 친동생인 황씨는 지난해 3월 22일 자신이 신도회장으로 있는 원주시지정면의 한 사찰 주지 스님에게 '타인 소유의 땅이라 길을 낼 수 없었던 곳에 사찰 진입로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면서 공무원 접대비와 도로공사비용 명목으로 5천만 원을 받아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황씨는 사기 등 전과 16범으로, 지난 2010년에도 대통령 친인척을 내세워 7천만 원을 부당하게 편취, 2011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형을 받아 현재 집행유예 기간인 것으로 드러났다.

황씨에게 접대비와 공사대금을 건낸 주지 스님은 10개월이 넘도록 공사가 진행되지 않자 황씨를 사기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고소장 내용을 바탕으로 황씨를 조사하고 나서 신병을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rae@yna.co.kr

(끝)




결과에 대한 보상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인간은 쓰레기가 될수도 성인군자가 될수도 있다.

Posted by Corealigh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