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돕는 행동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진행된 연구들은 남을 돕고난 후 정신적인 만족감이 신체적인 개선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결과를 공통적으로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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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훈 - 편지

mentality 2013. 3. 5. 00:33 |



눈물나네


옛앨범 뒤적거려 지나간 첫사랑


그리고 그 이후에도 ㅋ 마찬가지의 가사내용이 적용되는 그사람들



다들 잘 지내고 있으련가 모르겠다.



이거 정말 와닿는다..


사랑한사람이여 더이상 못보아도 사실 그대 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 왔음에 감사하오..



수많은 대한민국 남성들의 뜨거운 눈물과 가슴이 느껴진다



여기서 더 나가면 스토커요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마음이 허락하지않는 한에서


노래로 풀어내려니 얼마나 슬픈가. ㅋ 


신지훈 정말 노래 잘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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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간호사의 회상

mentality 2013. 2. 23. 19:34 |

[한겨레]

"맙소사!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도대체 무슨 짓을…." 싸한 소독약 냄새, 차가운 금속성 기구에 둘러싸인 병원이 돌연 인간의 얼굴로 탄식했다. 한 전직 간호사의 입을 통해서다. 김형숙(47)씨는 책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에서 환자들이 중환자실에서 잃는 자존감과 품위, 그리고 가장 인간적이어야 할 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말한다. 책은 중환자실에 들어서자마자 돌연 무기력해지는 환자, 그를 둘러싼 가족, 그리고 "깊은 회의를 느끼면서도 맹목적으로 죽음의 반대 방향으로 환자를 잡아끌고 버텨온 자신"을 고백한다.

[사람과사회]

중환자실 19년 근무 경험 책으로 펴낸 간호사 김형숙씨가 전하는 '사람' 없는 의료 시스템…

"나는 중환자실에서 고립된 채 죽고 싶지 않다"는 그가 강조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



때로 검사보다 정확한 직관

김형숙씨는 서울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중환자실 간호사로 19년 동안 일해왔다. 드문 경력이다. 10년을 넘기기 어려운 곳이 중환자실이다. 죽음이 쉽게 이기는 곳, 중환자실에 입원하면 의식이 멀쩡하던 환자도 불안해하고 망상에 시달리는 '중환자실 정신증'을 겪게 된다. 의료진도 법과 의학·도덕적 책임에 끌려다니는 약한 존재란다. 김씨에게서 죽음과 격투하던 침대를 재빠르게 정리하는 간호사들의 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생명을 구하기 위한 전력 질주, 그 순간에 매료되었노라"고 그는 고백한다. 대형 병원이 경쟁적으로 들여오는 연명기술과 첨단장비도 한몫했다. "그러나 아무리 의학기술이 휘황찬란하게 빛난다고 해도 중환자실에는 끊임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었고, 죽음을 맞는 이들의 상황은 오히려 악화된 듯" 보이자 회의가 시작됐다. "의학이 기술 중심으로 발달하면서 병실의 각 절차가 좋게 말하면 표준화되고 어찌 보면 시장화되어가고 있어요. 환자가 불안정할 때 간호사가 옆에 있어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는데 이런 건 수치화가 안 되니까 손쉽게 진정제나 억제제를 투여하는 쪽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요. 환자를 진정시킨 게 아니라 실은 무기력 상태에 빠트린 것일 수도 있는데 진정시킨 것으로 기록되지요."

죽음과 엄중한 전투를 치르는 중환자실에 관계의 자리를 마련하자는 건 지나치게 한가한 주장일까. "후배가 이런 경험을 했어요. 어느 날 모니터는 아무것도 경고하지 않는데도 왠지 저 환자가 곧 죽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는 거예요. 돌아눕히고 처치를 해야 하는데 죽음 직전에 있는 사람을 괴롭힐까봐 계속 망설였다죠. 그래도 처방대로 안 하면 안 되니까 할 수 없이 환자를 들어올렸는데 그 순간 환자의 고개가 떨어지더래요. 간호사의 팔 안에서 숨을 거둔 거지요." 김형숙씨도 수없이 검사보다 정확한 직관을 경험했다. 그러나 사고와 책임을 피하려는 의료 절차 속에는 직관도 연민도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책에는 그가 짊어진 후회와 회한의 기록이 많다. 간호사가 엄마인 줄 알고 매달리는 뇌종양에 걸린 아이를 검사실로 보내기 전에 한 번 더 안아주었더라면,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숨이 가쁜 52살 환자에게 급히 기도삽관을 하기 전에 조금만 더 기다릴 수 있었다면, 젊은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아버지의 말대로 심폐소생술을 계속하는 대신 딸을 편하게 보내자고 설득할 수 있었더라면…. 그러나 희망이 없어도 절차를 따라야 하는 시스템에서 죽어간 이들이 보낸 메시지는 대부분 중환자실을 벗어나지 못한다.

병원을 그만두게 된 이유

간호사 초년 시절, 약을 훔쳐갔다고 그를 몰아세우는 환자를 만나 간호사실에서 눈물을 펑펑 쏟은 일이 있었다. 고통스러운 결정은 의료진에게 미루고 나중에 거세게 항의하는 가족들도 있었다. 김형숙씨는 "그럼에도 병원에서 가장 약자는 환자"라고 말한다. "환자한테 무엇이 중요한지는 의료진이 판단합니다. 생명을 구하는 게 중요하니까 환자의 불편이나 요구는 쉽게 묵살할 수도 있어요. 환자의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도 병원입니다. 어떤 경우에든 환자는 치료를 거부할 수 없어요. 자해로 간주되기 때문이죠." 이상한 일이었다. 모두 환자를 위해 뛰고 있지만 생과 사의 경계에 있는 환자의 이야기는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가족들의 미련과 병원의 불필요한 절차를 줄이는 대신 그 자리에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두자는 것이 김형숙씨의 생각이다.

연명치료나 심폐소생술을 미리 거부하는 환자도 있다. 그쯤 되면 병원에서도 환자를 괴롭히는 검사나 처치를 걷어내고 고통을 줄이는 데만 힘쓴다. 그런데 손을 놓자마자 오히려 호전돼 중환자실을 나간 환자들이 있단다. "연명치료나 심폐소생술을 거부하는 것이 환자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는 증거죠. 남은 날들이 덜 고통스럽고 더 아름다운 날들이 되었을 때 환자가 스스로 회복할 기회를 가진다는 거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어지럽게 얽힌 튜브에 둘러싸여 죽음을 맞는 대신 좀더 따뜻하고 안온한 순간을 허락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김형숙씨는 "나는 중환자실에서 고립된 채 죽고 싶지 않다. 내 상태를 정확히 알고 내가 결정하고 준비하는 죽음을 맞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러나 준비된 죽음을 맞이하려고 집으로 가는 길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대안이 있을까?

"제 노후 대책인 셈이죠"

김형숙씨는 "무엇이 환자를 위하는 길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지면서" 2010년 병원을 그만두었다. "그래도 지금도 가끔 병원 꿈을 꿔요. 돌아가고 싶죠. 수없이 많은 사람과 사람, 생과 사의 드라마를 접한 곳이에요. 누군가의 마지막 날들에 대한 이야기가 생겨나고 거기 제 이야기도 얽혀 있죠." 드라마라면 중환자실에서만 맛볼 수 있는 역동성을 말한다. 환자, 보호자, 의료진 모두 물러설 수 없는 각자의 절박한 이유로 맞서던 순간들 말이다.

잊을 수 없는 환자들 이야기를 모아 써낸 것이 이번 책이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생명윤리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지역사회 간호학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환자들에게 의료 집착 외에 다른 길은 없는지 찾고 있다. "남은 날을 병원에 모조리 맡기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그래도 나중에 제가 나이 들어서 움직이지 못할 때 돌봐줄 시스템이 없다면 결국 중환자실에 의존하겠지요. 지역의 간호와 의료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려고요. 제 노후 대책인 셈이죠." 김형숙씨는 끝까지 의지와 행복감을 지닌 자신을 상상한다. 불안을 근본적으로 잠재우는 길은 여럿과 나누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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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토요판] 노환규의 골든타임


<2> 레지던트때 만난 두 환자


텔레비전에서는 며칠째 탈주범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1988년 10월8일 영등포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감되던 미결수 12명이 버스 안에서 교도관을 덮쳐 권총을 빼앗고, 버스를 몰고 서울로 돌아와 달아난 것이다. 그중 몇 명은 여러 집을 전전하다가 어느 가정집에 들어가 인질극을 벌이게 되었다.

흉부외과 전공의(레지던트) 첫해인 나는 어느 때보다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한달에 두어번이나 집에 들어갔을까. 10월16일, 그날 하루도 쏜살같이 지나갔다. 응급실로 내려오라는 연락만 없었더라면, 그저 바쁘지만 평범한 하루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일반외과와 흉부외과, 누가 해야 하느냐

응급실에서 나를 맞은 건 수십명의 기자들과 카메라였다. 카메라 조명으로 응급실은 방송국 세트장을 방불케 했다. 거기에 탈주범들의 대장 격인 지강헌(당시 34살)이 누워 있었다.

이날 세상 사람들의 이목은 응급실에 쏠려 있었다. '광란과 공포의 휴일 아침'이라고 묘사됐던 인질극이 막 끝난 뒤였다. 서울 북가좌동의 가정집에 침입해 인질극을 벌이다 경찰 총을 맞고 응급실에 실려 온 것이었다. 교도소 이송버스에서 빠져나온 탈주범 중 4명이 전날 밤 이 가정집에 침입했고, 이날 아침 경찰과 대치하던 중 둘은 자살했다. 지강헌은 경찰에게 비지스의 노래 '홀리데이'를 요구해 틀어놨다고 한다. 낮 12시 넘어 개시된 경찰 작전에 의해 한 명은 검거됐고, 유리 조각을 목에 찌르며 자해하던 그는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응급실에 실려 온 것이었다.

나는 일반외과 레지던트와 함께 지강헌 앞에 섰다. 처음에는 약간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의식을 5단계로 나누는데 그중 2번째 단계, 그러니까 의식이 있지만 아주 명료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의사소통도 약간 됐던 거 같다. 목에는 심각하지 않은 자상이 관찰됐다.

몸의 상처는 그가 어떻게 총을 맞았는지 보여주었다. 경찰이 쏜 총 한 발이 그의 왼쪽 무릎 바로 아래로 들어가 무릎 위로 관통하여 나왔다. 그리고 복부에도 총상이 있었다. 방향으로 보아 아마도 무릎을 관통하여 나온 같은 총알이 다시 복부에 들어가 박힌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두 발의 각기 다른 총상일 수도 있었다. 환자는 응급실에 도착 당시 출혈로 인한 쇼크 상태였다. 원래 복부 외상은 일반외과 진료 분야이고 흉부외과의 진료분야는 흉부 외상이지만, 워낙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응급환자가 총상으로 내원했기 때문에 여러 외과계열의 의사들이 모두 응급실에 호출됐다. 특히 흉부외과 의사들은 쇼크 처치에 능했기 때문에 나는 외과 레지던트와 함께 그를 진료하게 되었다.

혈압은 출혈성 쇼크로 떨어져 있었다. 과다출혈로 말초혈관은 이미 수축되어 있었기 때문에 말초혈관에는 바늘을 꽂을 수 없었다. 이런 경우 중심정맥이라고 부르는 큰 혈관에 주사를 삽입하는데, 지강헌에게도 쇄골하 정맥에 중심정맥 카테터(삽입관)를 꽂고 혈액과 수액을 공급했다. 혈압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복부 총상을 입은 환자이기에 나는 환자 진료를 일반외과에 맡기고 당직실로 올라갔다.

그런데 얼마 후 다시 응급실에서 흉부외과를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응급실에 내려가니, 그사이 환자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 응급실 도착 당시보다 배가 더 부풀어 있었고 음낭과 옆구리가 시커멓게 변색되어 있었다. 아마도 후복막(내장기관을 둘러싼 얇은 막의 뒷부분으로, 척수 및 동·정맥 주변이 포함됨) 구역에 있는 대정맥·대동맥 등 큰 혈관이 다쳤을 가능성(후복막 출혈)이 있었고, 간이나 장간막 동맥의 손상에 의한 복강내 출혈의 가능성도 의심됐다. 당시 1년차 레지던트인 나의 짧은 소견으로 수술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고 일반외과에서는 계속 혈액을 주입하면서 상태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반외과 레지던트가 난색을 표하며 내게 말하길 "이 환자는 아무래도 흉부외과에서 봐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배에 총을 맞은 환자를 가슴을 진료하는 흉부외과에서 진료하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나는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우리 일반외과 교수님께서 이 환자는 출혈이 문제인데 모든 출혈은 혈관이 다쳐 생기는 것이니 혈관을 전문으로 하는 흉부외과 의사들에게 환자를 넘기라고 지시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그는 난감해했다. 그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지시를 따라야 하는 저연차(1~2년차) 레지던트였다. 나 또한 힘없는 저연차였기 때문에 이 상황을 윗연차에게 보고했다.

'후복막 출혈'로 보이는 그 옆엔
힘없는 전공의 한명만이 있었다
"너도 철수하라"고 했지만
나마저 떠날 수는 없었다
탈주범은 쓸쓸히 내 품에서 죽었다
가슴을 찔려 피가 솟던 여자
초를 다퉜지만 수술은 거부됐다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였다
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그 교수님을 흘겨볼 뿐
다른 도리 없이 지켜봐야 했다


칼에 찔릴 때 좌우편 심장의 차이

잠시 후, 응급실에 내려와서 환자 상태를 확인한 흉부외과 윗연차 레지던트는 다시 위에 보고하고는 내게 환자를 일반외과에 맡기고 빠지라는 명령을 내리고 올라갔다.

그렇게 일반외과와 흉부외과의 힘없는 전공의 두 사람이 어찌할 바를 모르며 환자를 지켰다. 잠시 후 일반외과 소속의 윗연차 레지던트가 응급실에 와서는 나와 함께 있던 저연차 일반외과 레지던트에게 "왜 아직 남아 있느냐. 외과 교수님도 퇴근하셨다"며 환자를 흉부외과에 넘기고 철수할 것을 또다시 지시했다. 얼마 뒤 일반외과 전공의는 슬며시 사라졌다.

이제 그의 생명은 나의 몫이 되었다. 나는 다시 윗연차 레지던트에게 보고했다. 그는 응급실에 내려와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올라갔다. 잠시 후 응급실에 다시 내려온 그는 "복부 외상환자를 왜 흉부외과에서 진료하느냐. 일반외과에 넘기고 너도 철수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떠날 수 없었다. 이미 철수한 일반외과 의사들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 뒤 흉부외과 교수님도 퇴근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곤혹스러운 상황에서 무기력한 전공의였던 나는 환자 곁을 지키며 혈액을 공급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카메라는 철수하고, 응급실엔 고요가 찾아왔다. 그는 천천히 그리고 쓸쓸하게 내 품에서 운명했다.

그렇다면 원래 살 수 있었던 환자가 죽은 걸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수술을 해도 사망했을 가능성은 높았다. 그리고 당시 일반외과 의사들의 주장대로 후복막 출혈이 의심되므로 자연 지혈을 기대하는 것도 원칙일 수도 있었다. 후복막 출혈은 때에 따라서 수술하지 않고 상황을 좀더 지켜보기도 한다. 이를테면 환자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등의 둔상에 의해 후복막 출혈이 발생하는 경우 정맥이나 작은 혈관이 다쳤다면 피가 나오다가도 복막의 압력으로 출혈이 멎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를 기대하며 환자의 상태를 지켜보면서 기다리기도 한다. 수술을 하기 위해 개복하면 출혈이 더 심해지면서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상으로 인해 출혈성 쇼크에 빠졌던 지강헌의 경우, 지속되는 출혈 양상과 쇼크가 진행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응급수술에 들어가는 것이 최선의 치료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당시 나의 생각이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끝내 그는 숨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과와 무관하게 의사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지켜보는 것이 과연 최선이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경우는 또 있었다. 2년차 전공의 시절, 한 병원에 파견 나가 있을 때였다. 응급실로부터 급한 호출을 받고 뛰어 내려가 보니 젊고 아리따운 여자 환자가 가슴을 칼에 찔려 실려와 있었다. 찔린 부위는 흉골의 바로 오른쪽, 심장이었다. 심장에는 4개의 방이 있는데, 그중 좌심실은 압력도 높고 머리와 전신에 피를 공급하는 곳이라 칼에 찔리면 대부분 즉사한다. 반면 우심방과 우심실은 압력이 낮아 칼에 찔려도 즉사할 만큼 과다출혈이 즉시 발생하지는 않는다. 물론 환자가 견딜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우심방을 찔린 환자는 응급실에 도착하고 얼마 안 되어 심정지가 일어나 심폐소생술을 했다. 심박동은 다행히 곧 돌아왔으나, 심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는 멈출 길이 없었다. 거즈로 막고 눌러 보았지만, 검붉은 피가 금세 배어나왔다. 그야말로 초를 다투는 상황이었다. 방법은 응급수술 말고는 없었다. 즉시 가슴을 열고 출혈 부위를 봉합하는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의사 있냐" 물어봐도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

마침 병원에는 당직중인 교수님이 계셨다. 연락을 받고 바로 응급실로 내려오신 교수님은 보호자를 찾으셨다. 그러나 보호자가 있을 턱이 없었다.

칼에 찔린 여성 환자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호프집에서 회식을 하고 있었는데, 호프집을 찾아온 남자가 난동을 부리다가 난데없이 손님으로 찾아온 회사원을 찌른 것이었다.

심장을 칼에 찔려 울컥울컥 검붉은 피가 뿜어져 나오는 상황에서 "보호자가 없으니 수술을 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교수님을 바라보는 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당시 나의 속마음으로는 그 교수님의 턱을 한 대 치고 환자를 수술실로 바로 옮기고 싶었다. 그러나 2년차 전공의였던 나는 결국 숨진 젊은 회사원의 주검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것 외에,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수술을 거부한 교수님을 흘겨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카메라가 대부분 철수한 응급실에서 쓸쓸히 죽어간 지강헌의 경우, 의사들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고 결과론적인 얘기이지만, 일반외과 의사가 흉부외과 의사의 도움을 받거나 혹은 단독으로 응급수술을 감행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심장을 칼에 찔려 안타깝게 숨진 회사원의 경우도 결과와 무관하게 즉시 응급수술을 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 대다수 의사들은 이런 상황에서 뒤를 생각하지 않고 수술을 감행한다. 그런데 무엇이 의사의 최선의 진료를 막았을까. 수술을 기피했던 그 교수님은 아마도 용감하게 수술을 진행했다가 혹독하게 대가를 치른 가슴 아픈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최선의 진료는 외과의사의 용기를 요구한다. 대다수 외과의사들이 용기를 내어 수술을 감행하지만 사실 모든 외과의사들이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외과의사는 자신의 행위가 보호받을 수 있을 때 용기를 발휘한다. 뒷일을 걱정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돼야 하는 것이다. 만일 최선을 다하고서도 비난받거나 법률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면 의사들은 좀처럼 용기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비행기에서 응급환자가 생겨 주변을 향해 '의사 있느냐'고 물어보면, 요즘 많은 의사들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일어나지 않는다. 선의를 가지고 나서서 진료를 해도, 그 행위에 대해 나중에 법적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공사에서 의사 신분을 확인하는 것은 선물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법적 책임을 물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모든 의사는 환자를 살릴 수만 있다면 무덤까지라도 따라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의사가 그런 용기를 가지려면 의사의 판단이 존중과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끝으로 지강헌씨의 명복을 다시 빕니다. 25년 전 일의 기억을 더듬어 쓴 것이므로 세부적인 부분은 실제 상황과 일부 다를 수 있음을 밝혀둡니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는 많은 외과의사들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정리 남종영 기자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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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림돌 자동 제거 장치를 준비하라>

 

만일 시험   불안한 마음이 생기면,

그럼 무시하고 흘려보내면 되지 !”

이렇게 해결책까지 미리 상상해두면

불안한 마음이 닥치더라도 금방 사라진다.

(김상운, <왓칭 - 신이 부리는 요술>에서)

 

*****

사람들은 꿈을 그리라고 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목표에 집중하라고 합니다.

그런데꿈을 꾼다고 모두 성공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열심히 꿈꾼 것과는 반대의 결과를 낳는 경우도 많습니다.

날씬한 몸매를 매일 꿈꾸지만 오히려 체중은  불어나고,

좋은 성적을 얻어 기뻐하는 꿈을 꾸지만 오히려 성적은 내려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꿈꾼 대로 이루어지려면

 꿈까지 가는 과정을 그려야 합니다.

언제어디서어떻게  것인지 구체적으로 그려야 합니다.

목적지만 있고 가는 길을 모르면   없습니다.

 목적지로 가는 길을 생생하게 그릴수록 실행에 나설 수가 있습니다.

이때 반드시 그려두어야  것이 있습니다.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만나게  걸림돌에 대한 대책이 그것입니다.

걸림돌을 보지 못하고 가다보면 걸려 넘어지게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걸림돌 제거 방법을 모르면 작은 걸림돌이  바위처럼 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뉴욕대학의 골비처 교수가 개발한 걸림돌 자동 제거 장치가 있습니다.

그는  장치의 실효성을 위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했습니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어려운 수학시험을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 스크린에서 재미있는 동영상 광고가 흘러나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을  그룹으로 나누어  그룹의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험문제를 풀면서 동영상 광고가 거슬리면

수학문제에만 집중해야지하고 생각해보세요.”

 다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다르게 주문했습니다.

시험문제를 풀면서 동영상 광고가 거슬리면

그냥 무시하면 되지라고 생각해보세요.”

어느 그룹의 학생들이 문제를  많이 풀었을까요?

 

 결과는 이렇습니다.

수학문제에만 집중해야지라고 생각한 그룹이 54문제를  반면,

광고가 나오면 그냥 무시하면 되지라고 생각한 그룹은 78문제를 풀었습니다.

수학문제라는 목표에만 집중한 학생들보다

광고가 나올  무시한다는 대책을 세워둔 학생들이  많은 문제를  것입니다.

목표에만 집중하는 것보다 목표를 실행하는 과정에 나타나는

장애물에 대한 마음가짐까지 상상해두는 학생들이  좋은 결과를 거둔 것입니다.

 

바로 ‘만일 ~하면그럼 그땐 ~하면 되지라는 ‘if-then 공식입니다.

불안한 마음이 생길  덮어버리려거나 저항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걸림돌을 억지로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걸림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자신이 취할 행동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국민배우 안성기는 화를 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살면서    화를  적이 있다고  정도입니다.

그는 자신만의 화를 다스리는 법이 있다고 합니다.

그가 말하는 방법 또한 ‘if-then’입니다.

 가장 화났을 , ‘화장실  다녀오겠다 말한다.”

화라는 걸림돌을 만났을  화장실에  거울을 보며 마음을 잡는 것입니다.

걸림돌 자동 제거 장치를  가지고 다니니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걸림돌을 만났을  억지로  걸림돌을 치우거나 깨트리려 하면

만일 ~하면그럼 그땐 ~하면 되지라고 해결책을 미리 준비해두면

불안한 마음이 닥치더라도 금방 사라집니다.

걸림돌을 없애고 디딤돌로 바꾸는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걸림돌 자동 제거 장치를 준비하고 출발합니다.

만일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면그럼 ‘   있어라고 다짐해야지.”

만일 기분 나쁜 말을 들으면그럼 ‘ 화장실에 다녀오겠다 말해야지.’

 

*** 철학자들의 말 속에서 희망이 되고 행복이 되는 것을 찾아

신간 <희망의 말 – 2030 고뇌하는 당신을 위한>을 발간했습니다.

우리 함께 <희망의 말>을 통해 희망과 행복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삶에서 희망을 찾고 계신 분자녀들에게 삶의 지혜를 전하고 싶으신 분,

직원들에게 행복한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선물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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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바람 인생 무지개 행복” – 나를 다스리지 못하면 아무도 다스릴 수 없다.

박승원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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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이 무더위에 지친 가운데 런던올림픽의 중요 경기가 한국시간으로 새벽에 열려 이래저래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폭염 속에 한줄기 소낙비처럼 국민을 감동시키는 한국 선수들의 선전소식이 잇따라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현재까지 판정논란 4건 중 3건이 한국선수에게 벌어져 안타까움을 더하게 합니다. 박태환의 수영, 조준호의 유도, 신아람의 펜싱 종목에서 사상 유래가 없는 오심이 벌어져 국민들로 하여금 분통이 터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선수들은 각 종목에서 선전을 펼치고 있어 더위에 지친 국민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한국에 첫 금을 선사한 사격 진종오 선수나 어이없는 심판오심을 극복하고 당당히 은메달을 연거푸 따낸 수영 박태환 선수, 그리고 양궁 여자단체 올림픽 7연패를 명중시킨 기보배 선수 등이 주인공들입니다. 또한 비록 메달은 못 땄어도 한국의 남녀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경기를 펼쳐 그 투지만은 높이 사야 할 것입니다.

신흥 스포츠 강국으로 떠오른 한국을 견제하기 위한 심판들의 오심이 심해짐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한국선수들의 마인드컨트롤 덕분인 것 같습니다.

마인드컨트롤은 박태환 선수처럼 음악을 들으면서 하기도 하고, 사격 진종오 선수나 유도 김재범 선수처럼 자신의 종교에 의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독서를 하면서 하는 방식이나 명상, 묵상, 최면을 통해서 하는 방식도 있고요. 최면은 행복지수상승최면, 집중력향상최면, 컨디션최면이 있다고 합니다.

한국이 여자양궁 단체전에서 중국과의 피 말리는 접전 끝에 올림픽 7연패의 위업을 이룰 때 마지막 한 발의 사수는 기보배였습니다. 기보배는 201-219의 상황에서 마지막 화살을 9점으로 마무리 지으며 한국의 승리를 결정지었습니다. 기보배 선수가 흔들림 없이 마지막 한 발을 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한국 양궁선수들의 마인드컨트롤 덕분입니다. 

사격 진종오 선수는 사격을 하기 전에 자신만의 주문을 중얼거리며 마음을 추스리고 있습니다. 불교신자인 진선수의 좌우명은 진공묘유(眞空妙有: 텅 비우면 오묘한 일이 일어난다)로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강조했습니다.

유도에서 멋진 금메달을 따낸 김재범 선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시합 전이나 후에 기도를 올리며 자신을 독려하고 있었습니다. 4년 전의 결승 상대자인 독일선수를 다시 만나 멋지게 설욕하며 금메달을 따낸 후 김재범 선수는 “베이징올림픽과 런던올림픽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북경에서는 죽기 살기로 했고, 런던에서는 죽기로 했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무엇보다 어이없는 심판 오심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있는 박태환 선수의 미소 띤 얼굴은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이 배워야 할 마음 자세입니다. 신장도 183㎝에 불과한 박태환이 2미터가 넘는 라이벌들을 제치고 선전한 것은 대단한 정신력으로 한 언론은 “금보다 아름다운 은빛 미소”라는 제목으로 찬사를 보냈습니다.

한국 여자배구의 주 공격수로 강호 세르비아를 꺾는 이변을 연출한 김연경 선수는 경기 후 “몸은 괜찮다. 마인드컨트롤도 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세상사가 마찬가지이지만 한국 선수들이 어느 종목이든 세계 1등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우리 선수들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배워서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잘 된다. 좋아진다. 좋다”라고 주문을 걸어보심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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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쟁불안 억누를 때 사용하는 ‘마인드 콘트롤 5개 항목’

김용승 박사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마인드 콘트롤 훈련 때 사용하는 ‘마음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리스트’에는 합리성을 강조하는 130개 항목과 경쟁심을 강화하는 120개 항목 등 250개 항목이 들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예를 들어 수험생이나 일반인들이 마인드 컨트롤로 경쟁불안 심리를 떨쳐버리고 합리적인 판단을 가다듬고 싶을 때 사용해볼 만한 5개 항목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나를 진정으로 생각해 주는 사람은, 결과만으로 합격했다고 나를 좋아하고 불합격했다고 싫어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많은 피땀과 치밀한 준비를 한 시험이면 그 결과가 어떻든 나를 향한 그들의 애정은 한결같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한다.

△준비 과정에서 상대방이 나보다 정성과 노력을 많이 들였으면 상대방이 이기는 것은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내가 많이 들였으면 당연히 내가 이긴다. 나는 내가 들인 정성과 노력의 양으로 실제 시험 직전에 이미 승부는 나있다는 걸 알고 있다. 준비에 정성과 노력을 쏟아붓는 일은 지금 내가 실제 할 수 있는 일이다.

△시험 중 실수가 걱정이 된다. 그러나 실수도 연습하면 할수록 점점 줄어드는 것을 알고 있다. 충분한 연습과 준비로 실수를 최대한 줄이려 한다.

△나는 새로운 지식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즐겁다. 내 지식이, 내 실력이 차곡차곡 쌓여갈 때마다 기쁨을 느끼며 보람을 느낀다. 좋은 결과나 합격은 이런 것들이 모여서 이뤄지는 것이다. 나는 내 실력 향상에 모든 것을 ‘올인’한다.

△나에게 있어 ‘성공’이란, 내가 해낼 수 있는 한의 최고를 이루기 위해 내가 실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것을 느끼는, 스스로의 만족에서 마음이 평안한 상태이다. 모두 내 힘으로 실제 해낼 수 있는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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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차리게해주는 명언베스트모음 ㅋㅋ$$$$$$$$$$$$$$$$$$$$$$$$$$$$$$$$$$$$$$$$$$$$$$$$$$$

 

감히 도전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지그 지글라


그대의 도전을 존중하라, 어둠의 딱지를 붙인 공간이 실은 밝은 빛으로 그대를 데려가는 곳이니. -사냐 로만


기쁨과 도전은 미루지 마라. -김용삼


나는 계속 타석에 나가 날아오는 공을 강타했다. -베이브 루스


너의 한계성에 도전해 싸우라. 그러면 분명히 그것들은 네 능력 안에 들어올 것이다. -리차드 바크


담력이 탐나거든 두려워 손도 내밀지 못하는 일에 도전하라. 이것이 공포심을 극복하는 가장 신속하고 정확한 방법이다. -앤드류 카네기


시도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마라. 회피한다고 해도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어려움은 언젠가는 반드시 현실로 다가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용삼


시도하지 않는 곳에 성공이 있었던 예는 결코 없다. - H. 넬슨


도전에 성공하는 비결은 단 하나, 결단코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디오도어 루빈


모든 것을 인내로 대하는 사람만이 모든 것에 도전한다. -바우베낙스


불행에 굴복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도 대담하게 적극적이며 과감하게 불행에 도전할 일이다. -베르길리우스


비록 실패하더라도 큰 것을 감행하는 편이, 훨씬 큰 즐거움이 있으며, 고통도 작은 일일수록 크고, 큰 일일수록 적어지는 반비례 관계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큰 일이란 당초부터 승리도 패배도 초월한 마음가짐이 아니고서는 감히 도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루즈벨트


산다는 것은 죽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며,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절망의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고, 시도해본다는 것은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모험은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생에서 가장 큰 위험은 아무 것도 감수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레오 버스카글리아


어떤 일을 끝마쳐야 할 날짜를 정해 그것에 도전하라. -윌리암 메닝거


인생의 의미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발견되지 않는다. 좀더 구체적 상황으로 당면하는 도전에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발견되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그대 자신을 내놓으라. 그대에게 주어진 상황, 현재라고 하는 이 시간에 그대를 내놓으라. 그렇게 하면 그대에게 의미가 보일 것이다. -빅터 프랭크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양사언


해보지 않고는 당신이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프랭클린 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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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차범근에 대해서 만큼은 '최고'라는 데 이론이 없다. 아시아 최고의 축구영웅으로 불러 손색이 없다. 세계가 인정하는 분데스리가 기록이 그 사실을 든든히 입증한다. 그에게도 배고픈 시절이 있었고, 자칫 곁길로 샐 뻔한 고비도 있었다. 물론 그러한 위기들이 더욱 강하고 크게 성장하는 거름이 되긴 했지만. 차범근은 늘 깔끔하고 세련된 이미지다. 그래서 그가 털어놓는 어릴 적 산골 얘기는 더 정감이 있다.

▶자장면이 뭐예요?

어린 시절 마을엔 전기도 안 들어왔다. 경기도 화성군 태안면 산동네. 화산초등학교 4학년 때 운동을 시작했다. 축구, 핸드볼, 육상에 씨름까지 했다. 빠른 데다 운동신경 뛰어나니 못할 게 없었다. 그러다 보니 혼자 바빴다. 이 동네에서 핸드볼 예선을 뛰고, 저 동네로 날아가 축구 준결승을 치르고.... 대충 그런 식이었다.

화성군 대표로 경기도 육상대회(200m)에 출전하기 위해 인천에 갔을 때였다. 당시 최고의 보양식은 설렁탕. 한데 설렁탕에 물린 선생님이 "자장면 한번 먹어 보자"며 중국집에 들어갔다. 사실 그때까지 자장면이란 건 듣도보도 못한 음식이었다.

"잔뜩 기대하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보던 시커먼 게 쑥 나오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젓가락을 놔 버렸죠. 어쩌면 아버지랑 달구지 타고 가면서 보던 쇠똥이랑 그렇게 똑같을 수가 있는지.... 시커먼 거 밑에 국수가 있는지도 몰랐죠."

당황한 선생님이 면을 물에 헹궈 내밀었다. 장맛으로 먹는 자장면을 물에다 빨았으니 맛이 있을 리 만무했다. 또 젓가락을 놔버렸다. 결국, 그날도 설렁탕을 먹었다.

이듬해 합숙 때 다시 자장면과 부딪쳤다. "친구들은 다 잘 먹더라고요. 도대체 무슨 맛인가 싶어 젓가락 끝으로 장을 살짝 찍어 혀에 대 봤죠. 근데 되게 맛있더라고요. 그때부터 자장면 광이 됐습니다. 대표단에 있을 때도 외국 나갔다 오면 자장면부터 먹었습니다. 지금도 엄청 좋아하죠."

▶아버지의 선물

참 가난하던 시절이었다. 여름에 이미 쌀이 떨어져 옥수수, 호박, 수제비로 배를 채웠다. 그러니 운동화는 그림의 떡. 고무신에 밀가루 배급포대 찢은 헝겊을 감아 공을 찼다. 그도 아니면 맨발이었다. 그랬으니 아버지가 스케이트를 사오시던 날 삼 형제가 잠을 설친 건 너무도 당연했다.

"다음날 새벽 마을 앞 저수지로 갔죠. 아버지는 위에서 내려다보시고, 큰형부터 차례로 탔습니다. 형들은 몇 걸음도 못 가 나뒹굴었지만 저는 넘어지지 않고 탔죠. 3일째 되니 형들이 꽁무니를 빼더라고요. 아버지는 저만 데리고 저수지로 가셨습니다."

겨우내 영하 20도의 혹한 속에서 매일 새벽 1시간씩 스케이트를 탔다. 당시 스케이트야 칼날 뻔하고, 신발 가죽 뻔했을 터. 발목이 끊어질 듯 아팠지만, 어금니 물고 저수지를 돌았다.

여름에는 1시간이 걸리는 '동네 한 바퀴'를 주문하셨다. 물론 새벽에. 다 뛰면 날계란 하나를 먹을 수 있었다.

나중에 화제가 됐을 만큼 굵은 허벅지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아버지는 운동하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계절에 맞춰 기초체력을 다져주고 계셨던 거다.

"아버지는 운동선수의 정신을 무척 강조하셨어요. 가난해도 진실하게, 당당하게 살라고 하셨죠. 그때 몸에 밴 새벽 운동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제게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이죠."

차범근, 가출하다

축구 하려고 서울 영도중학교에 들어갔는데 유니폼 입기도 전에 팀이 해체됐다.

그 바람에 팔자에도 없는 필드하키 선수가 됐다. 공도 못 차면서 영등포까지 그 먼 길을 통학하려니 속이 아플 수밖에. 새벽에 나가 밤늦게 귀가하는 게 고역이었다. 죽어도 공을 차고 싶어 집에 전학 얘기를 꺼냈다. 당시에는 전학하는 데 적잖은 돈이 들었다. 아들의 운동정신과 근성을 간파한 가난한 농사꾼 아버지는 삶의 터전인 땅을 쪼개 팔았다.

2학년 2학기 때 경신중학교로 옮겼고, 비지땀을 쏟은 결과 기량이 크게 늘었으나 경신고 진학 대상에서는 제외되고 말았다. 눈물을 머금고 경성고로 방향을 틀었다.

한데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경신고 교장선생님이 난리를 쳤고, 경성고 입학시험 치는 날 감독과 선배들이 들이닥쳐 경신고로 다시 진로를 돌려놨다.

이 과정에서 경신고 선배들이 대놓고 으르렁거렸다. 후배 잘못은 아니지만 귀한 대접받는 햇병아리가 거슬렸던 게다.

운동부 군기가 군대 뺨치던 시절. 겁에 질려 순간 엉뚱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선배들 구타가 너무 두려워 가출했습니다. 서울 친구 집에 일주일을 숨어 있었어요. 근데 친구는 학교 가고 저는 집에 있으니 친구 어머니 눈치가 보여 더는 못 있겠더라고요."

땅 팔아 전학까지 시켜줬는데 가출을 했으니 아버지에겐 다시 없는 불효였다. 결국, 큰형에게 연락해 집으로 내려갔고, 아버지 손에 이끌려 경신고 장운수 감독 손에 넘겨졌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다. 장 감독이 축구부 선배들에게 "범근이 손대면 혼내주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방어막을 쳐준 것이다. 만에 하나 삐끗했더라면 그저 그런 하키선수가 됐거나, 가출 청소년이 될 뻔했다. 그랬으면 대한민국은 축구영웅을 갖지 못했을 테고.

▶옥상으로 올라와!

고교 2학년 때 청소년대표가 됐고, 3학년 때 A대표팀에 발탁됐다. 1972년 태국에서 열린 아시안컵 이라크와의 조 편성 경기가 데뷔전이 됐다.

섭씨 35도가 넘는 날씨에 혀를 빼 문 선배들은 경기중 "범근아"만 외쳐댔다. 죽으라 뛰었지만 0대0. PK로 승부를 가려야 했다. 지친 선배들은 후배들을 앞세웠다. 청소년대표인 차범근과 황재만(당시 고려대 1학년)이 등을 떼밀렸고, 공교롭게도 둘 다 헛발질을 하고 말았다. 결과는 2-4 패.

차범근이 힘껏 때린 볼은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져 관중석에 떨어졌다. 속칭 새를 잡은 것이다.

"선배들이 집합을 시켰어요. 외국에서 '옥상으로 올라와'를 한 거죠. 정말 라자호텔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다행히 맞지는 않았지만."

천하의 차범근이 태극마크 신고식을 혹독하게 치른 셈이다.

▶'대표팀 잡부' 차범근

그 시절엔 다 그랬지만, 대표팀 막내라 궂은 일은 독차지였다.

"태릉선수촌 시절에는 일요일에 외출이 허용됐습니다. 근데 나가는 선배마다 빨랫감을 던져주는 겁니다. 점심때가 다 돼서야 빨래가 끝나죠. 얼마나 비벼댔는지 손바닥이 다 벗겨졌습니다."

공에 바람 넣는 일도 당연히 막내 몫이었다. "선배들 자는데 혼자 공 서른 개 바람 다 넣고 나면 파김치가 됐어요. 나중엔 펌프가 뜨거워져 손도 못 댈 정도가 되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바람을 넣다 보면 덜 들어가고, 더 들어가는 게 있게 마련. 하필 딱딱한 공을 차 통증을 느낀 왕고참 이회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바람 넣는 것부터 다시 배워." 볼보이는 되레 재미난 일에 속했다.

▶독일 선수에게 마늘 먹이다

골잡이로 명성을 날리던 독일 분데스리가 시절. 너무나 다른 훈련법과 식생활로 3년을 고생했다.

"훈련을 감질나게 하는 거예요. 몸이 근질거려 못 견딜 정도로. 그래서 훈련 끝나고 혼자 30분을 더 뛰었어요. 서로 이해를 못 했죠."

하기야 한국에서 두세 시간씩 오전, 오후 두 차례 하던 훈련을 달랑 한 시간 반 하고 접으니 근질거릴 수밖에. 식생활도 고통스러웠다. 늘 속이 허했다. "뜨끈한 우족탕 같은 걸 먹고 싶더라고요. 포만감이 와야 하는데 늘 뭔가 부족했어요. 스테이크도 두 개는 먹어야 양이 찼죠. 그게 창피했어요. 동료가 괜찮다며 많이 먹으라고 했지만 못 먹고 산 티를 내는 것 같아 늘 민망했습니다. 공조차 못 찼으면 밥이나 축내는 식충이가 될 뻔했지요."

3년이 지난 후에야 중심을 잡았다. 운동습관도 식습관도 모두 독일식으로 바뀌었다. "견뎌내려면 적응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데 정작 심각한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냄새였다. 한국인의 마늘냄새. 나흑바이라는 동독 출신 선수는 5m 전방에서부터 코를 쥐었다. "너희도 겨드랑이에서 노린내 난다"고 반박도 했지만, 굳이 부딪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꾀를 냈다. "팀 동료를 집으로 불러 불고기를 먹였죠. 잘 먹더라고요. 서로 이해하는 계기가 됐죠. 서른여섯까지 공을 찰 수 있었던 배경도 됐고요."

차범근은 나중에 '유치원 선생님'으로 불렸다. 조카뻘 햇병아리들에게 경험담도 들려주고, 이런저런 조언도 하면서 얻은 애칭이다. 독일에서 10년간 주전으로 뛰면서 넣은 골은 모두 131개. 그 중 당대 최고 리그인 분데스리가에서만 98골을 기록했다. PK골은 단 한 개도 없다.

▶차범근, 술 마신 적 없다? 있다!

보통 차범근은 술을 안 마시는 걸로 알고 있다. 평생 입에도 대지 않았다고 우기는 이도 있다. 아니다. 다 틀렸다. 그도 술을 마신다.

"집안 식구 다 잘 마십니다. 저는 성공하고 싶어 안 마셨을 뿐이지요. 그렇다고 아주 안 마시지는 않습니다. 더울 때는 맥주 한 잔씩 합니다. 와인도 마시고요." 와인 중에서는 독일산 리슬링을 즐긴다. 요즘 들어 자주 안 마시지만, 손님하고 마주하면 리슬링을 딴다. 대신 소주나 위스키, 고량주 같은 독주는 마셔본 적 없다. 예의상 입에는 대지만 한 잔을 털어 넣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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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한국축구의 열정 - 손흥민 is all in (2)
손흥민은 기적을, 아버지 손웅정은 손흥민을 만들어냈다.

 

손흥민에 대한 축구 팬들의 관심이 나날이 커지는 가운데, 손흥민 뿐만이 아니라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아디다스 동영상에서 보셨죠?
“아버지는 그런 내게 직접 훈련 노트를 그려주시며, 모든 동작들이 내 몸에 새겨질 수 있도록 지켜봐 주셨다.”
얼마 전에는 TV에서 손웅정과 손흥민의 다큐가 방영되어 회자가 되기도 했었죠. 스타들의 열정을 넘어서는 아버지의 열정이 여기에 있습니다. 아버지 손웅정과 손흥민의 열정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손흥민의 열정 이야기 (1) 보러가기 ☞



내가 공을 찼던 내용이 너무나 싫다.
손웅정은 프로 선수였습니다. 1985년부터 1999년까지 상무, 현대 호랑이, 일화 천마에서 활동했죠. 그러다 부상을 입고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습니다.
손웅정은 자신의 축구 경력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제가 스스로 진짜 선수 생활할 때도 제 스스로 불만이 정말 많았어요. 공을 제대로 못 다루니까. 제가 공 찼던 내용이 너무나 싫어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만큼은 나와 정반대의 시스템을 갖고 가르쳐야겠다. 그리고 일단 축구 선수는 공에 비밀이 있는데, 공을 못 다루고 어떻게 축구를 하겠느냐. 아, 그걸 극복하는 건 기본기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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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커대디, 손웅정
어느 일간지에서 손웅정을 사커대디라 부르더군요. 손흥민이라는 신예 스트라이커를 키워낸 것에 대한 예찬이자, 더불어 체계적인 훈련 방식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사커대디라 부른 것이겠죠.
지난 2월에는 손웅정의 제자인 김병연(16세)이 함부르크 유스에 입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시금 손웅정 씨의 지도력이 빛을 발했었죠.
손웅정 씨의 훈련 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합니다.
기본기. 무조건 기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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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본기라는 것이 말처럼 쉽게 쌓이지가 않잖아요.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이면 실전에 나가서 시험해 보고픈 것이 사람 심리이고, 기본기는 하다보면 느는 것이라고들 생각하기 일쑤니까요. 하지만 연륜이 있으신 어르신들은 언제나 말씀하시죠.
“기본기가 중요하다.”
손웅정 씨는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지만, 남들처럼 기본기를 착실히 쌓기보다는 실전에서 감각을 익히려 했었답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후회를 하게 되죠. 그래서 시작된 것이 아들 손흥민의 기본기 훈련이랍니다.




 

손흥민으로서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거예요. 멋지게 드리블을 해서 슛을 넣길 바랐는데, 하루 종일 몸에서 공이 떨어지지 않는 연습만 하니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하지만 손흥민은 아버지 손웅정을 신뢰했고, 손웅정은 열정으로 손흥민에게 보답했답니다. 학교보다 20배 이상 빡빡한 훈련을 진행할 때마다 손웅정은 손흥민과 함께 했습니다. 여느 부모들처럼 공부하라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곁에서 함께 공부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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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웅정은 손흥민의 훈련 노트를 그려주었고, 모든 동작들이 손흥민의 몸에 새겨질 수 있도록 지켜봤습니다. 아니,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함께 뛰었습니다. 벌써부터 부모님들의 눈에 불이 켜지는 것이 보이는 것 같네요. 당장 내 아들, 딸과 함께 합숙 훈련을 하리라,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잠시 진정해주세요.^^a 손흥민이 손웅정의 훈련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은, 축구에 대한 손흥민의 열정이 손웅정 못지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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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기본을 아느냐?
김병연은 손웅정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죠.
“미니게임, 슈팅 연습도 없이 2시간 동안 리프팅만 했습니다. 훈련 내내 볼 컨트롤만 배우니 조바심이 나더군요.”
1년 남짓 손웅정 감독에게 기본기를 배운 김병연은, 여느 젊은 선수들처럼 시합 경험을 쌓고 싶어서 축구 명문 중학교에 진학하게 된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죠.
“중학교에 가서 기본기가 왜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손웅정 감독님께 기본기를 1년밖에 배우지 않았는데도 내가 기본기가 뛰어난 편에 속하더군요. 학교에선 볼을 다루는 훈련보다는 체력위주의 훈련이 많아서 부상이 잦았습니다. 그럴 땐 학교에 휴가 쓰고 춘천에 가서 손웅정 감독님께 훈련을 받곤 했습니다.”
손웅정 감독에게 아이를 맡긴 학부모들은 김병연과 똑같은 생각을 하곤 합니다.
‘언제까지 기본기를 익혀야 하지? 다른 아이들처럼 시합에 나가서 입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경력이 쌓이고, 좋은 고등학교와 클럽에 들어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손웅정은 학부모의 요구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기본기였죠. 공을 다루지 못하는 선수는 시합에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어떤 선수는 2년 내내 볼 트래핑을 한 이후에야 시합에 나갈 수 있었으니, 손웅정 감독의 엄격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프리시즌에서 9경기 9골을 넣어, 함부르크 SV 팀 내 최다 골을 기록!
무적함대 첼시와의 경기에서 역전골!
18세 분데스리가 데뷔골(팀 내 최연소 기록)!

신예 스트라이커 손흥민의 기록 행진은 기본기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지겹도록 반복됐던 기본기 훈련이 오늘날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8살 때 축구를 시작해, 첫 시합을 뛰기까지 8년이 걸렸고 매일 한 시간씩 볼을 몸에서 떨어뜨리지 않는 훈련을 거듭해 오던 어느 날, 날아드는 공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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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웅정, 손흥민 부자의 열정.
우리네의 부모님들은 ‘공부하라’는 말을 쉽게 합니다. 하지만 ‘공부하자’라고 말하는 부모님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기본이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분은 많지만, ‘기본을 지키자’고 몸소 보여주시는 분은 보이질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가 공부에도 기본에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일 테지만요. ^^a
당신의 열정은 어디에 있나요? 부모님의 말 속에 담겨있습니까? 아이의 미래에 있습니까? 나와 부모님, 혹은 나와 아이가 함께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열정적으로 달려 나가는 일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일어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손웅정과 손흥민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현실로 만들어냈죠. 부자가 똑같은 열정을 품었거든요.^^b
타인의 삶을 생각하기에 앞서서, 자신부터 돌아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열정은 어디에 있나요?


Posted by Corea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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