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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23 한 간호사의 회상
  2. 2013.02.22 [한겨레][토요판] 노환규의 골든타임

한 간호사의 회상

mentality 2013. 2. 23. 19:34 |

[한겨레]

"맙소사!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도대체 무슨 짓을…." 싸한 소독약 냄새, 차가운 금속성 기구에 둘러싸인 병원이 돌연 인간의 얼굴로 탄식했다. 한 전직 간호사의 입을 통해서다. 김형숙(47)씨는 책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에서 환자들이 중환자실에서 잃는 자존감과 품위, 그리고 가장 인간적이어야 할 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말한다. 책은 중환자실에 들어서자마자 돌연 무기력해지는 환자, 그를 둘러싼 가족, 그리고 "깊은 회의를 느끼면서도 맹목적으로 죽음의 반대 방향으로 환자를 잡아끌고 버텨온 자신"을 고백한다.

[사람과사회]

중환자실 19년 근무 경험 책으로 펴낸 간호사 김형숙씨가 전하는 '사람' 없는 의료 시스템…

"나는 중환자실에서 고립된 채 죽고 싶지 않다"는 그가 강조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



때로 검사보다 정확한 직관

김형숙씨는 서울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중환자실 간호사로 19년 동안 일해왔다. 드문 경력이다. 10년을 넘기기 어려운 곳이 중환자실이다. 죽음이 쉽게 이기는 곳, 중환자실에 입원하면 의식이 멀쩡하던 환자도 불안해하고 망상에 시달리는 '중환자실 정신증'을 겪게 된다. 의료진도 법과 의학·도덕적 책임에 끌려다니는 약한 존재란다. 김씨에게서 죽음과 격투하던 침대를 재빠르게 정리하는 간호사들의 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생명을 구하기 위한 전력 질주, 그 순간에 매료되었노라"고 그는 고백한다. 대형 병원이 경쟁적으로 들여오는 연명기술과 첨단장비도 한몫했다. "그러나 아무리 의학기술이 휘황찬란하게 빛난다고 해도 중환자실에는 끊임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었고, 죽음을 맞는 이들의 상황은 오히려 악화된 듯" 보이자 회의가 시작됐다. "의학이 기술 중심으로 발달하면서 병실의 각 절차가 좋게 말하면 표준화되고 어찌 보면 시장화되어가고 있어요. 환자가 불안정할 때 간호사가 옆에 있어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는데 이런 건 수치화가 안 되니까 손쉽게 진정제나 억제제를 투여하는 쪽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요. 환자를 진정시킨 게 아니라 실은 무기력 상태에 빠트린 것일 수도 있는데 진정시킨 것으로 기록되지요."

죽음과 엄중한 전투를 치르는 중환자실에 관계의 자리를 마련하자는 건 지나치게 한가한 주장일까. "후배가 이런 경험을 했어요. 어느 날 모니터는 아무것도 경고하지 않는데도 왠지 저 환자가 곧 죽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는 거예요. 돌아눕히고 처치를 해야 하는데 죽음 직전에 있는 사람을 괴롭힐까봐 계속 망설였다죠. 그래도 처방대로 안 하면 안 되니까 할 수 없이 환자를 들어올렸는데 그 순간 환자의 고개가 떨어지더래요. 간호사의 팔 안에서 숨을 거둔 거지요." 김형숙씨도 수없이 검사보다 정확한 직관을 경험했다. 그러나 사고와 책임을 피하려는 의료 절차 속에는 직관도 연민도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책에는 그가 짊어진 후회와 회한의 기록이 많다. 간호사가 엄마인 줄 알고 매달리는 뇌종양에 걸린 아이를 검사실로 보내기 전에 한 번 더 안아주었더라면,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숨이 가쁜 52살 환자에게 급히 기도삽관을 하기 전에 조금만 더 기다릴 수 있었다면, 젊은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아버지의 말대로 심폐소생술을 계속하는 대신 딸을 편하게 보내자고 설득할 수 있었더라면…. 그러나 희망이 없어도 절차를 따라야 하는 시스템에서 죽어간 이들이 보낸 메시지는 대부분 중환자실을 벗어나지 못한다.

병원을 그만두게 된 이유

간호사 초년 시절, 약을 훔쳐갔다고 그를 몰아세우는 환자를 만나 간호사실에서 눈물을 펑펑 쏟은 일이 있었다. 고통스러운 결정은 의료진에게 미루고 나중에 거세게 항의하는 가족들도 있었다. 김형숙씨는 "그럼에도 병원에서 가장 약자는 환자"라고 말한다. "환자한테 무엇이 중요한지는 의료진이 판단합니다. 생명을 구하는 게 중요하니까 환자의 불편이나 요구는 쉽게 묵살할 수도 있어요. 환자의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도 병원입니다. 어떤 경우에든 환자는 치료를 거부할 수 없어요. 자해로 간주되기 때문이죠." 이상한 일이었다. 모두 환자를 위해 뛰고 있지만 생과 사의 경계에 있는 환자의 이야기는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가족들의 미련과 병원의 불필요한 절차를 줄이는 대신 그 자리에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두자는 것이 김형숙씨의 생각이다.

연명치료나 심폐소생술을 미리 거부하는 환자도 있다. 그쯤 되면 병원에서도 환자를 괴롭히는 검사나 처치를 걷어내고 고통을 줄이는 데만 힘쓴다. 그런데 손을 놓자마자 오히려 호전돼 중환자실을 나간 환자들이 있단다. "연명치료나 심폐소생술을 거부하는 것이 환자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는 증거죠. 남은 날들이 덜 고통스럽고 더 아름다운 날들이 되었을 때 환자가 스스로 회복할 기회를 가진다는 거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어지럽게 얽힌 튜브에 둘러싸여 죽음을 맞는 대신 좀더 따뜻하고 안온한 순간을 허락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김형숙씨는 "나는 중환자실에서 고립된 채 죽고 싶지 않다. 내 상태를 정확히 알고 내가 결정하고 준비하는 죽음을 맞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러나 준비된 죽음을 맞이하려고 집으로 가는 길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대안이 있을까?

"제 노후 대책인 셈이죠"

김형숙씨는 "무엇이 환자를 위하는 길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지면서" 2010년 병원을 그만두었다. "그래도 지금도 가끔 병원 꿈을 꿔요. 돌아가고 싶죠. 수없이 많은 사람과 사람, 생과 사의 드라마를 접한 곳이에요. 누군가의 마지막 날들에 대한 이야기가 생겨나고 거기 제 이야기도 얽혀 있죠." 드라마라면 중환자실에서만 맛볼 수 있는 역동성을 말한다. 환자, 보호자, 의료진 모두 물러설 수 없는 각자의 절박한 이유로 맞서던 순간들 말이다.

잊을 수 없는 환자들 이야기를 모아 써낸 것이 이번 책이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생명윤리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지역사회 간호학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환자들에게 의료 집착 외에 다른 길은 없는지 찾고 있다. "남은 날을 병원에 모조리 맡기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그래도 나중에 제가 나이 들어서 움직이지 못할 때 돌봐줄 시스템이 없다면 결국 중환자실에 의존하겠지요. 지역의 간호와 의료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려고요. 제 노후 대책인 셈이죠." 김형숙씨는 끝까지 의지와 행복감을 지닌 자신을 상상한다. 불안을 근본적으로 잠재우는 길은 여럿과 나누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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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토요판] 노환규의 골든타임


<2> 레지던트때 만난 두 환자


텔레비전에서는 며칠째 탈주범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1988년 10월8일 영등포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감되던 미결수 12명이 버스 안에서 교도관을 덮쳐 권총을 빼앗고, 버스를 몰고 서울로 돌아와 달아난 것이다. 그중 몇 명은 여러 집을 전전하다가 어느 가정집에 들어가 인질극을 벌이게 되었다.

흉부외과 전공의(레지던트) 첫해인 나는 어느 때보다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한달에 두어번이나 집에 들어갔을까. 10월16일, 그날 하루도 쏜살같이 지나갔다. 응급실로 내려오라는 연락만 없었더라면, 그저 바쁘지만 평범한 하루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일반외과와 흉부외과, 누가 해야 하느냐

응급실에서 나를 맞은 건 수십명의 기자들과 카메라였다. 카메라 조명으로 응급실은 방송국 세트장을 방불케 했다. 거기에 탈주범들의 대장 격인 지강헌(당시 34살)이 누워 있었다.

이날 세상 사람들의 이목은 응급실에 쏠려 있었다. '광란과 공포의 휴일 아침'이라고 묘사됐던 인질극이 막 끝난 뒤였다. 서울 북가좌동의 가정집에 침입해 인질극을 벌이다 경찰 총을 맞고 응급실에 실려 온 것이었다. 교도소 이송버스에서 빠져나온 탈주범 중 4명이 전날 밤 이 가정집에 침입했고, 이날 아침 경찰과 대치하던 중 둘은 자살했다. 지강헌은 경찰에게 비지스의 노래 '홀리데이'를 요구해 틀어놨다고 한다. 낮 12시 넘어 개시된 경찰 작전에 의해 한 명은 검거됐고, 유리 조각을 목에 찌르며 자해하던 그는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응급실에 실려 온 것이었다.

나는 일반외과 레지던트와 함께 지강헌 앞에 섰다. 처음에는 약간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의식을 5단계로 나누는데 그중 2번째 단계, 그러니까 의식이 있지만 아주 명료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의사소통도 약간 됐던 거 같다. 목에는 심각하지 않은 자상이 관찰됐다.

몸의 상처는 그가 어떻게 총을 맞았는지 보여주었다. 경찰이 쏜 총 한 발이 그의 왼쪽 무릎 바로 아래로 들어가 무릎 위로 관통하여 나왔다. 그리고 복부에도 총상이 있었다. 방향으로 보아 아마도 무릎을 관통하여 나온 같은 총알이 다시 복부에 들어가 박힌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두 발의 각기 다른 총상일 수도 있었다. 환자는 응급실에 도착 당시 출혈로 인한 쇼크 상태였다. 원래 복부 외상은 일반외과 진료 분야이고 흉부외과의 진료분야는 흉부 외상이지만, 워낙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응급환자가 총상으로 내원했기 때문에 여러 외과계열의 의사들이 모두 응급실에 호출됐다. 특히 흉부외과 의사들은 쇼크 처치에 능했기 때문에 나는 외과 레지던트와 함께 그를 진료하게 되었다.

혈압은 출혈성 쇼크로 떨어져 있었다. 과다출혈로 말초혈관은 이미 수축되어 있었기 때문에 말초혈관에는 바늘을 꽂을 수 없었다. 이런 경우 중심정맥이라고 부르는 큰 혈관에 주사를 삽입하는데, 지강헌에게도 쇄골하 정맥에 중심정맥 카테터(삽입관)를 꽂고 혈액과 수액을 공급했다. 혈압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복부 총상을 입은 환자이기에 나는 환자 진료를 일반외과에 맡기고 당직실로 올라갔다.

그런데 얼마 후 다시 응급실에서 흉부외과를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응급실에 내려가니, 그사이 환자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 응급실 도착 당시보다 배가 더 부풀어 있었고 음낭과 옆구리가 시커멓게 변색되어 있었다. 아마도 후복막(내장기관을 둘러싼 얇은 막의 뒷부분으로, 척수 및 동·정맥 주변이 포함됨) 구역에 있는 대정맥·대동맥 등 큰 혈관이 다쳤을 가능성(후복막 출혈)이 있었고, 간이나 장간막 동맥의 손상에 의한 복강내 출혈의 가능성도 의심됐다. 당시 1년차 레지던트인 나의 짧은 소견으로 수술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고 일반외과에서는 계속 혈액을 주입하면서 상태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반외과 레지던트가 난색을 표하며 내게 말하길 "이 환자는 아무래도 흉부외과에서 봐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배에 총을 맞은 환자를 가슴을 진료하는 흉부외과에서 진료하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나는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우리 일반외과 교수님께서 이 환자는 출혈이 문제인데 모든 출혈은 혈관이 다쳐 생기는 것이니 혈관을 전문으로 하는 흉부외과 의사들에게 환자를 넘기라고 지시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그는 난감해했다. 그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지시를 따라야 하는 저연차(1~2년차) 레지던트였다. 나 또한 힘없는 저연차였기 때문에 이 상황을 윗연차에게 보고했다.

'후복막 출혈'로 보이는 그 옆엔
힘없는 전공의 한명만이 있었다
"너도 철수하라"고 했지만
나마저 떠날 수는 없었다
탈주범은 쓸쓸히 내 품에서 죽었다
가슴을 찔려 피가 솟던 여자
초를 다퉜지만 수술은 거부됐다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였다
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그 교수님을 흘겨볼 뿐
다른 도리 없이 지켜봐야 했다


칼에 찔릴 때 좌우편 심장의 차이

잠시 후, 응급실에 내려와서 환자 상태를 확인한 흉부외과 윗연차 레지던트는 다시 위에 보고하고는 내게 환자를 일반외과에 맡기고 빠지라는 명령을 내리고 올라갔다.

그렇게 일반외과와 흉부외과의 힘없는 전공의 두 사람이 어찌할 바를 모르며 환자를 지켰다. 잠시 후 일반외과 소속의 윗연차 레지던트가 응급실에 와서는 나와 함께 있던 저연차 일반외과 레지던트에게 "왜 아직 남아 있느냐. 외과 교수님도 퇴근하셨다"며 환자를 흉부외과에 넘기고 철수할 것을 또다시 지시했다. 얼마 뒤 일반외과 전공의는 슬며시 사라졌다.

이제 그의 생명은 나의 몫이 되었다. 나는 다시 윗연차 레지던트에게 보고했다. 그는 응급실에 내려와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올라갔다. 잠시 후 응급실에 다시 내려온 그는 "복부 외상환자를 왜 흉부외과에서 진료하느냐. 일반외과에 넘기고 너도 철수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떠날 수 없었다. 이미 철수한 일반외과 의사들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 뒤 흉부외과 교수님도 퇴근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곤혹스러운 상황에서 무기력한 전공의였던 나는 환자 곁을 지키며 혈액을 공급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카메라는 철수하고, 응급실엔 고요가 찾아왔다. 그는 천천히 그리고 쓸쓸하게 내 품에서 운명했다.

그렇다면 원래 살 수 있었던 환자가 죽은 걸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수술을 해도 사망했을 가능성은 높았다. 그리고 당시 일반외과 의사들의 주장대로 후복막 출혈이 의심되므로 자연 지혈을 기대하는 것도 원칙일 수도 있었다. 후복막 출혈은 때에 따라서 수술하지 않고 상황을 좀더 지켜보기도 한다. 이를테면 환자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등의 둔상에 의해 후복막 출혈이 발생하는 경우 정맥이나 작은 혈관이 다쳤다면 피가 나오다가도 복막의 압력으로 출혈이 멎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를 기대하며 환자의 상태를 지켜보면서 기다리기도 한다. 수술을 하기 위해 개복하면 출혈이 더 심해지면서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상으로 인해 출혈성 쇼크에 빠졌던 지강헌의 경우, 지속되는 출혈 양상과 쇼크가 진행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응급수술에 들어가는 것이 최선의 치료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당시 나의 생각이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끝내 그는 숨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과와 무관하게 의사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지켜보는 것이 과연 최선이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경우는 또 있었다. 2년차 전공의 시절, 한 병원에 파견 나가 있을 때였다. 응급실로부터 급한 호출을 받고 뛰어 내려가 보니 젊고 아리따운 여자 환자가 가슴을 칼에 찔려 실려와 있었다. 찔린 부위는 흉골의 바로 오른쪽, 심장이었다. 심장에는 4개의 방이 있는데, 그중 좌심실은 압력도 높고 머리와 전신에 피를 공급하는 곳이라 칼에 찔리면 대부분 즉사한다. 반면 우심방과 우심실은 압력이 낮아 칼에 찔려도 즉사할 만큼 과다출혈이 즉시 발생하지는 않는다. 물론 환자가 견딜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우심방을 찔린 환자는 응급실에 도착하고 얼마 안 되어 심정지가 일어나 심폐소생술을 했다. 심박동은 다행히 곧 돌아왔으나, 심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는 멈출 길이 없었다. 거즈로 막고 눌러 보았지만, 검붉은 피가 금세 배어나왔다. 그야말로 초를 다투는 상황이었다. 방법은 응급수술 말고는 없었다. 즉시 가슴을 열고 출혈 부위를 봉합하는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의사 있냐" 물어봐도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

마침 병원에는 당직중인 교수님이 계셨다. 연락을 받고 바로 응급실로 내려오신 교수님은 보호자를 찾으셨다. 그러나 보호자가 있을 턱이 없었다.

칼에 찔린 여성 환자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호프집에서 회식을 하고 있었는데, 호프집을 찾아온 남자가 난동을 부리다가 난데없이 손님으로 찾아온 회사원을 찌른 것이었다.

심장을 칼에 찔려 울컥울컥 검붉은 피가 뿜어져 나오는 상황에서 "보호자가 없으니 수술을 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교수님을 바라보는 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당시 나의 속마음으로는 그 교수님의 턱을 한 대 치고 환자를 수술실로 바로 옮기고 싶었다. 그러나 2년차 전공의였던 나는 결국 숨진 젊은 회사원의 주검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것 외에,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수술을 거부한 교수님을 흘겨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카메라가 대부분 철수한 응급실에서 쓸쓸히 죽어간 지강헌의 경우, 의사들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고 결과론적인 얘기이지만, 일반외과 의사가 흉부외과 의사의 도움을 받거나 혹은 단독으로 응급수술을 감행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심장을 칼에 찔려 안타깝게 숨진 회사원의 경우도 결과와 무관하게 즉시 응급수술을 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 대다수 의사들은 이런 상황에서 뒤를 생각하지 않고 수술을 감행한다. 그런데 무엇이 의사의 최선의 진료를 막았을까. 수술을 기피했던 그 교수님은 아마도 용감하게 수술을 진행했다가 혹독하게 대가를 치른 가슴 아픈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최선의 진료는 외과의사의 용기를 요구한다. 대다수 외과의사들이 용기를 내어 수술을 감행하지만 사실 모든 외과의사들이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외과의사는 자신의 행위가 보호받을 수 있을 때 용기를 발휘한다. 뒷일을 걱정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돼야 하는 것이다. 만일 최선을 다하고서도 비난받거나 법률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면 의사들은 좀처럼 용기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비행기에서 응급환자가 생겨 주변을 향해 '의사 있느냐'고 물어보면, 요즘 많은 의사들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일어나지 않는다. 선의를 가지고 나서서 진료를 해도, 그 행위에 대해 나중에 법적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공사에서 의사 신분을 확인하는 것은 선물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법적 책임을 물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모든 의사는 환자를 살릴 수만 있다면 무덤까지라도 따라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의사가 그런 용기를 가지려면 의사의 판단이 존중과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끝으로 지강헌씨의 명복을 다시 빕니다. 25년 전 일의 기억을 더듬어 쓴 것이므로 세부적인 부분은 실제 상황과 일부 다를 수 있음을 밝혀둡니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는 많은 외과의사들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정리 남종영 기자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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